라트비아 경찰이 지난해 10월 유로폴과 함께 압수한 'SIM 농장' 장비. (사진=라트비아 국가경찰 유튜브 캡처)
3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라트비아 경찰 대테러부대는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경찰기구(유로폴)와 함께 대규모 ‘SIM 농장’ 거점 등 26곳을 수색해 SIM 카드 4만장을 돌리던 장비 약 1200대를 압수했다. 가동하지 않던 것까지 합하면 압수한 SIM 카드는 수십만장에 달한다. 빨간 포르쉐 등 고급 차량 4대도 함께 압류했다.
SIM 농장은 스마트폰 1대에 1장씩 넣는 SIM 카드를 상자 하나에 수십장씩 꽂아 한꺼번에 조종하는 장비다. 사람이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아도 각각의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SIM 카드를 밭처럼 늘어놓고 ‘재배’한다는 뜻에서 농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로폴에 따르면 운영자들은 전 세계 범죄자들에게 80여개국의 전화번호를 빌려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신의 번호를 드러내지 않고 본인 인증을 거쳐 신원과 위치를 숨긴 가짜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정만 4900만개가 넘는다.
계정들은 사기뿐 아니라 협박, 불법 이민 알선, 아동 성착취물 유통 등에도 쓰였다. 피해액은 수백만유로(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라트비아에서만 최소 1500명이 온라인 사기를 당해 약 42만유로(약 6억4000만원)를 잃었다.
라트비아 경찰이 지난해 10월 유로폴과 함께 압수한 'SIM 농장' 장비. (사진=라트비아 국가경찰 유튜브 캡처)
SIM 카드가 아닌 ‘실제’ 스마트폰 수백대를 한꺼번에 돌리는 ‘폰 농장’도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대기업 프린스그룹의 천즈 회장이 호텔·카지노·은행 사업 뒤에서 강제노동형 사기 거점을 운영했다며, 관련 암호화폐 약 2조엔(약 17조2000억원) 규모를 몰수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공소장에는 천즈 회장이 보관하던 폰 농장 사진이 첨부됐다. 넓은 실내에 금속 선반이 늘어서 있고, 스마트폰 수백대가 가지런히 세워져 화면을 밝히고 있다. 공소장은 이를 “암호화폐 투자 사기 등 사이버 범죄를 쉽게 하려고 쓰인 자동화 콜센터”라고 설명했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시설 2곳에 휴대전화 1250대가 설치됐고, 이를 통해 유명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한 곳에서만 계정 7만6000개를 운영·관리했다.
◇677만원이면 ‘농장주’…“누구나 속을 수 있다”
문제는 급속히 발전한 AI 덕분에 전문 지식이나 큰돈 없이도 작은 농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휴먼시큐리티의 위협정보팀을 이끄는 린지 케이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 폰 농장 조립 키트를 직접 구매해봤다.
상자 모양의 장비에는 화면 등 외장을 떼어낸 스마트폰 기판 20개가 끼워져 있었다. 고장 난 휴대전화 등에서 떼어낸 기판을 중고시장에서 싸게 사들인 것으로 추정됐다. 컴퓨터 1대로 기판 전체에 명령을 내리는 제어 프로그램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고, 생성형 AI 덕분에 복잡한 명령어를 짤 필요도 없다.
굳이 실제 스마트폰 기판을 쓰는 건 SNS 업체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케이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조작한 것처럼 속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용도 많이 필요 없다. 케이의 계산에 따르면 20대 규모 폰 농장을 차리는 초기 비용은 장비 구입비 1000달러(약 135만원)를 포함해 약 5000달러(약 677만원), 운영비는 월 450달러(약 61만원) 수준이다.
캄보디아 경찰과 검찰 관계자들이 지난 3월 11일 수도 프놈펜의 한 사이버 사기 거점을 급습해 압수한 외국 SIM 카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AFP)
이에 따라 폰 농장이 범죄뿐 아니라 여론 조작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필리포 멘처 미국 인디애나대 석좌교수는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많은 ‘시민’이 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한 사람이나 한 조직이 조종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이런 가짜를 가려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며, 누가 무엇을 위해 퍼뜨리는 정보인지 한 번 숨을 고르고 확인하지 않으면 농장이 만든 정보를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