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발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소속 댄 설리번 알래스카주 상원의원을 지원하려는 행보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 추진의 공을 설리번 의원에게 돌리며 “S가 들어간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직접 지지를 호소했다. 다만 선거를 겨냥한 발표라도 한국의 투자와 사업 실행을 공개적으로 못 박은 만큼, 한국 정부가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해 참여 범위를 줄이거나 투자 조건을 조정하려 할 경우 정치적·외교적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국의 대미투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
한미 공동 발표문은 알래스카 LNG에 대해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에 따른 상업적 합리성 및 모든 관련 국내법적 요건의 충족을 조건으로 하여 검토에 착수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명시했다.
한국의 투자 참여나 사업 실행을 확정한 문구가 아니다. 검토를 시작하되 실제 추진에는 상업적 합리성과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을 둔 것이다.
LNG 판매와 한국의 구매 권익에 관한 문구에도 단서가 붙었다. 미국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제성이 확보되는 가격으로 구매 계약 체결을 보장하고, 한국에 우선적 접근권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제성 있는 판매 가격과 한국의 우선 접근권을 확보하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그 결과까지 무조건 보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국 벤더와 공급업체의 우호적인 관여를 지원한다고도 명시했다. 다만 한국 기업의 참여를 지원한다는 내용과 한국 정부의 투자 결정을 확정하는 것은 별개다.
◇트럼프 “한국이 투자할 것”…러트닉은 알래스카 몫 제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은 공동 발표문의 조건부 설명과 결이 달랐다. 그는 30일(현지시간) 에너지 투자 발표 행사에서 “우리 행정부가 대한민국과 체결한 합의에 힘입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에 속하는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발표하게 됐다”며 “한국은 최대 20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텍사스의 대형 발전시설과 신규 대형 원전 8기, “마침내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을 투자 대상으로 열거했다.
한국을 투자 주체로 특정하고 알래스카를 그 자금으로 건설할 사업에 포함한 것이다. 해당 발언에는 공동 발표문에 담긴 검토 착수와 상업적 합리성, 국내법 요건에 관한 설명이 붙지 않았다.
러트닉 장관은 전체 투자 약속을 사업별 금액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오늘 총액이 2000억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세 개의 사업을 발표한다”며 알래스카 LNG에 “500억달러를 조금 넘는 금액”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원전 8기에는 본사업비 1000억달러와 예비비 200억달러를 합쳐 1200억달러를, 텍사스 가스화력발전소에는 22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전체 투자 한도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알래스카에 들어갈 금액까지 제시했다.
러트닉 장관은 “그동안 실현되지 못했고 모두가 이야기만 했지만, 대통령의 협상력과 무역합의가 결합하면서 이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발언 말미에는 “이제 사업 실행에 들어가게 돼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공식 문서에서는 검토를 시작하기로 한 사업을 공개 석상에서는 실행 단계로 설명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오른쪽)의 발언을 들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AFP)
사업을 실제 추진하는 개발사도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다. 알래스카 LNG 개발사인 글렌파른의 브렌던 듀발 최고경영자(CEO)는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3년이 걸리며, 자금 조달이 이뤄지는 대로 즉시 착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3년 뒤에는 알래스카에 저렴한 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LNG 수출은 그로부터 약 2년 뒤 시작된다. 따라서 LNG 수출까지는 대략 5년”이라고 설명했다.
글렌파른은 알래스카 LNG의 주도 개발사이자 지분 75%를 보유한 사업자다. 나머지 25%는 알래스카주가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공사(AGDC)를 통해 보유한다.
‘5년 뒤 수출’이라는 설명까지 붙은 것은 알래스카 사업을 2단계까지 완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개발사 공식 자료에 따르면 알래스카 LNG는 재무적으로 독립된 두 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북부 노스슬로프의 가스를 알래스카 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가스관 건설이다. 2단계는 남부 니키스키에 LNG 액화시설과 관련 인프라를 추가해 해외 수출을 가능하게 하는 사업이다.
LNG 수출 일정을 제시한 것은 내수용 가스관에 그치지 않고 2단계 시설까지 건설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별도로 상업성을 확보해야 하는 수출사업도 가스관 완공 이후 이어질 일정으로 설명한 것이다. 다만 이 일정 자체가 한국이 2단계까지 최종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는 근거는 아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도 “미국이 태평양 연안에 LNG 수출터미널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친구와 동맹국들에 대한 수출 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알래스카를 바꾸고 지정학도 바꿀 것”이라며 “동남아시아 전역이 가스와 천연자원을 공급받기 위해 미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료들은 내수용 가스관을 넘어 아시아 수출 거점 확보를 이번 사업의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상업적 합리성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공사비 초과 위험으로 알래스카 LNG의 상업성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금융 조달을 위해 추가 구매 물량 확보와 기존 구매 합의의 구속력 있는 계약 전환도 필요하다.
◇선거 지원 성격에도…공개 실행 선언은 협상 부담
이번 발표에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알래스카의 공화당 지지를 끌어올리려는 정치적 계산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소속 댄 설리번 상원의원을 거듭 치켜세우며, 알래스카 LNG를 자신과 설리번 의원이 함께 성사시킨 사업으로 소개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50년 동안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이야기해왔다”며 “우리는 마침내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발표는 직접적인 지지 호소로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설리번 의원과 이름이 비슷한 후보를 비난하면서 “S가 들어간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말했다. 설리번 의원의 중간 이름 이니셜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최대 1만2000개의 건설 일자리와 1000개의 운영 일자리를 창출하고, 알래스카 가정의 연간 에너지 비용을 최대 1500달러, 경우에 따라 2200달러까지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투자로 추진할 사업을 알래스카 유권자들이 체감할 일자리와 생활비 절감 성과로 제시한 셈이다.
한국의 투자를 관세 인하의 대가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합의에 따라 한국은 수천억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며 “그 대가로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관세를 낮추기 위해 돈을 지불했고, 그 돈의 일부가 이번 사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도 “관세는 15%이고 투자는 2000억달러”라며 무역합의가 없었다면 이들 사업을 실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를 겨냥한 발표라고 해서 한국의 부담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 추진을 자신과 공화당의 성과로 내걸고 구체적인 일자리·비용 절감 효과까지 약속한 만큼, 한국이 상업적 합리성을 근거로 속도를 늦추거나 조건을 다시 협의하려 할 때 미국 측의 정치적 기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