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기금리는 단기금리와 엇갈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약해져도 장기채 투자자는 쉽게 안심하지 못한다. 만기까지 물가와 재정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돈을 오래 묶어두는 위험에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 즉 ‘기간 프리미엄’이 커지는 배경이다.
첫째 요인은 재정이다. 미 연방정부 총부채는 지난 8월 40조달러(약 5경4000조원)를 넘어 2017년 초 약 20조달러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민간 등이 보유한 국채뿐 아니라 정부 내부 계정 간 부채도 포함한다. 국가별 부채 순위를 단순 비교하기보다 이자를 감당할 세입이 충분한지 살펴야 한다.
적자가 계속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높은 금리로 새 빚을 내거나 기존 빚을 갚으면 이자 부담이 커져 적자를 다시 늘린다. 지출과 세입을 함께 손봐야 하지만 증세와 복지 조정은 정치적 저항이 크다. 성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물가 상승률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해 빚 부담을 줄이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 수익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 투자자는 미국 국채의 매력을 낮게 평가하고 투자를 줄일 수 있다. 정부가 빚 부담을 투자자에게 떠넘긴다는 인식까지 퍼지면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도 약해질 수 있다.
둘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유권자의 요구에 따른 지출 확대와 잦은 정책 변경은 장기투자의 위험을 높인다. 미국 성장의 동력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도 전력과 지역 부담 등을 둘러싼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투자자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까지 금리에 반영한다.
셋째는 연준의 정책 설명이다. 물가가 목표를 웃돌 때 어떤 조건에서 대응할지 불분명하면 시장의 예상 범위도 넓어진다. 연준이 금리 결정의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 강경한 발언만으로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AI 투자용 회사채의 공급 증가도 국채 수요에 영향을 주고 있다. 회사채와 국채의 금리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고 공급 부담이 작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두 금리가 함께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과 정책에 대한 신뢰를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본다.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은 이미 발행한 국채를 되사 거래가 원활하도록 돕는 수단이다. 그 자체를 금리 억제나 ‘금융 억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입 확대만으로 재정적자와 물가 불안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금리 안정 조치와 함께 부채 관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달러 약세는 투자자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신뢰 약화에 따른 자금 이동의 결과일 수 있다. 위험보다 수익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투자자가 미국 자산을 줄이거나 달러 하락에 대비한 거래를 늘리면 달러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다만 시장 불안이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키울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한다. 달러가 급격히 떨어지기보다 완만하게 약해질 것으로 보는 이유는 AI다. 미국 기술기업의 이익과 성장에 대한 기대는 해외 투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유입은 미국의 대외 자금 수요를 충당하는 데 도움을 준다. AI 랠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달러 하락 압력도 제한될 수 있다.
일본도 변수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려 미·일 금리 차이가 좁아지면, 엔화를 싸게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엔캐리트레이드)의 이점이 줄어든다. 일본 기준금리가 약 2%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전망이지만 실제 자금 이동은 환율 전망과 환위험 관리 비용에 달렸다.
완만한 달러 약세는 신흥국의 달러 부채 부담을 덜고 투자자금 유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외 지급 능력이 탄탄한 신흥국 채권과 중국·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주식에 주목할 만하다. 다만 AI 기대 붕괴가 달러 약세의 원인이라면 관련 아시아 기업도 타격을 받는다. 달러가 얼마나 하락하느냐 만큼 왜 떨어지는지가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