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해병대원 日여성 강도살인 혐의…오키나와 다시 들끓는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06일, AM 04:17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대원이 일본인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일 미국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하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까지 직접 재발 방지를 요구하면서 중국 견제를 위해 안보협력을 강화해온 미일동맹의 오랜 난제인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여성이 ‘미군은 나가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대원이 여성을 살해했다는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열렸다. (사진=AFP)
5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여성이 ‘미군은 나가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대원이 여성을 살해했다는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열렸다. (사진=AFP)
로이터통신과 AP 등에 따르면 오키나와 경찰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해병대 일병 데빈 제이컵 밸러드(20)를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밸러드는 오키나와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에 주둔하는 제3해병원정군 소속이다.

경찰은 밸러드가 지난 3일 새벽 나하시의 한 호텔에서 일본인 여성 안나 야기(39)를 살해하고 지갑과 배낭 등을 빼앗은 것으로 보고 있다. AP에 따르면 폐쇄회로(CC)TV에는 밸러드가 피해 여성과 함께 호텔에 들어간 뒤 혼자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밸러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사건이 알려지자 오키나와에서는 주민들의 항의집회가 열렸다. 나하의 오키나와현청 인근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피해자를 추모하고 미군 범죄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수십 년간 미군기지와 관련한 범죄·사고에 시달려왔다고 느끼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누적된 불만에 다시 불을 붙였다.

◇日외무상, 美대사 불러 직접 항의

일본 정부의 대응 수위도 높았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4일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직접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모테기 외무상은 이번 사건을 “극히 잔인하고 흉악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미국 측에 일본 경찰 수사에 전면 협조하고 미군 관계자들의 기강을 확립하는 한편 재발 방지책을 철저히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글래스 대사는 인명 피해에 깊은 유감을 나타내고 일본 당국의 수사에 전면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성도 별도로 움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주일미군 사령관을 방위성으로 불러 “일본 측은 이번 사건을 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유족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수사 협조, 철저한 기강 확립과 재발 방지책도 요구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특히 미일동맹과 이번 사건을 직접 연결했다. 그는 “현재 함께 억지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여러 일이 있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인명이 희생된 만큼 이에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일동맹이 일본 국민과 오키나와 주민들의 신뢰 아래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5일 국회에서 사건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가 미국 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수사 협조와 기강 확립,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사건을 “극도로 잔혹하고 흉악하다”고 규정했다.

미 해병대 소속 데빈 제이컵 밸러드 일병이 5일(현지시간)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한 경찰서를 나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밸러드는 일본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교도·로이터)
미 해병대 소속 데빈 제이컵 밸러드 일병이 5일(현지시간)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한 경찰서를 나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밸러드는 일본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교도·로이터)
◇미군 범죄 반복…기지 갈등 다시 불붙나

오키나와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이 큰 것은 미군 관련 범죄에 대한 오랜 기억 때문이다. 오키나와에는 일본 내 미군기지가 집중돼 있고 일본에 배치된 미 해병대원 약 1만8000명의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다. 대만과 가까운 오키나와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일본의 서태평양 방위전략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미군 범죄와 사고는 기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반복적으로 촉발해왔다. 1995년 미군 3명이 12세 일본인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은 대규모 주민 시위로 이어졌다. 2016년에도 미군 군속에 의한 여성 성폭행·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키나와현 역시 공식 자료에서 1972년 일본 반환 이후 미군 관련 살인과 성폭력, 사고가 계속돼 주민들이 과중한 기지 부담을 지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최근에도 문제가 이어졌다. 오키나와현의 공식 기록에는 2025년 미 해병대원들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항의 결의가 올라와 있다. 현 경찰 역시 미군인 등의 범죄 통계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일 양국이 중국의 군사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 남서부의 방위력을 강화하는 시점에 터졌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사건으로 미군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질문에 주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현재 안보환경을 감안하면 빈틈없는 미일 억지력을 보여주는 것도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미일 양국에는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면서도 미군기지가 집중된 오키나와 주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라는 오래된 숙제가 다시 부상한 셈이다.

지난 2018년 3월 24일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의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에 MV-22 오스프리 수송기들이 배치돼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2018년 3월 24일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의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에 MV-22 오스프리 수송기들이 배치돼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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