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세' 대세론 깨졌다…국채값 급락에도 달러는 4% 올라, 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06일, AM 12:3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달러화는 올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 시장의 약세 예상도 빗나갔다. 유로존 재정 불안, 이란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 예상을 웃도는 미국 경제 성장이 달러를 밀어올렸다. 다만 미국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 열기에 크게 기대고 있어 과거보다 강세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102선에서 거래되며 연초 대비 약 4.1% 상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관세전쟁’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대형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달러 약세를 점쳤지만 빗나간 셈이다.

(사진=AFP)
(사진=AFP)
◇유로존 불안·유가 급등·美성장이 달러 밀어올려

통화 가치는 해당 국가 돈을 사려는 수요가 늘면 오른다. 올해 달러를 사려는 돈이 몰린 이유로 크게 세 가지가 꼽혔다.

우선 유로화의 상대적 약세다. 유로존 정치·재정 불안에 투자자들이 유로존 자산을 팔면서 유로화 가치는 1유로당 1.17달러에서 1.12달러 안팎으로 떨어졌다. 불안의 진원지는 프랑스다. 재정 혼란 우려에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내다 팔면서 국채 가격이 떨어졌고,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10년물 금리는 올해 3.5%에서 4.8%로 뛰었다.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는 1.3~1.4%포인트로 벌어졌다. 유로화를 팔아치운 투자자들이 갈 곳은 많지 않았고, 달러가 대표적인 피난처가 됐다. 유로화는 영국 파운드화와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으론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과거엔 유가가 오르면 달러가 약해졌다. 미국이 원유를 사들이면서 해외로 나간 달러가 결국 다른 통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되면서 흐름이 뒤집혔다. 이제는 유가가 오를수록 미국으로 들어오는 돈이 늘어 달러를 떠받친다. 이코노미스트는 “기름값 상승은 한 달 뒤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엔 골칫거리지만 달러엔 호재”라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미국 경제다. 지난해 말 경제학자들은 올해 분기별 성장률(연율 기준)을 1.6~1.9%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분기 2.5%, 2분기 2.2%를 기록했다. 가계 소비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성장을 이끌었다. 3분기 성장률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조사 기준 2.5%로 추정되며, 일부 지표는 3%를 웃도는 성장을 가리킨다.

성장세에 올라타려는 외국 자금도 몰려들었다. 외국인이 미국 주식이나 채권을 사려면 먼저 달러로 바꿔야 하는 만큼, 미국 자산 매수는 곧 달러 수요로 이어진다. AI 열풍에 미국 증시가 강세를 이어가자 올해 7월까지 12개월 동안 외국인의 미국 주식·펀드 순매수 규모는 약 9000억달러(약 1208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1년 고점보다 80% 많다.

같은 기간 미국 회사채 순매수도 약 4500억달러(약 604조원)로,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약 20년 만에 가장 많았다.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마련하려고 회사채를 쏟아낸 것과 맞물린 흐름이다. 블룸버그통신 집계에 따르면 알파벳·메타·아마존·오라클이 지난해 초부터 발행한 회사채는 3000억달러(약 403조원)가 넘는다. 경기 과열로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이자가 붙는 미국 자산의 매력을 키웠다.

◇국채값 급락에도 달러 강세…AI 거품 꺼지면 흔들

눈에 띄는 점은 미국 국채 금리도 치솟았는데 달러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5.33%로 2002년 이후 최고치를 새로 썼고, 30년물은 장중 5.7%까지 올랐다. 국채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는 뜻이다.

정부와 AI 기업들이 채권을 대규모로 쏟아내면서 공급이 넘친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에선 국채 금리 급등이 유로화 약세로 이어졌지만, 미국에선 높아진 금리와 성장 기대가 외국 자금을 끌어들이며 달러를 떠받쳤다.

문제는 달러 강세의 기반이 과거보다 좁아졌다는 점이다. 달러는 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와 세계 경제가 위기일 때 모두 강세를 보여 왔다. 외환 전략가 스티븐 젠은 이를 ‘달러 스마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미소가 한쪽으로 일그러진 ‘비웃음’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유로 대비 강세에서 보듯 안전자산 매력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미국 위험자산의 수익성에 기대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AI 붐이 거품으로 판명돼 꺼지면 수익을 좇던 투자자들은 미국 자산과 달러를 사들였을 때만큼 빠르게 내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환시장이 더 큰 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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