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 '디젤 거래'…"서방 동맹 균열 심화"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2일, AM 09:08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디젤 거래’로 서방 동맹의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연료 수출 제재를 6개월간 유예하고, 러시아는 디젤 수십만톤을 세계 시장에 풀기로 하면서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강한 파트너의 약한 결정”…러시아엔 ‘반가운 선물’

11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번 미·러 디젤 합의에 대해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려는 우크라이나와 캐나다, 우리 동맹국들의 노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번 합의를 “강한 파트너의 약한 결정”이라고 깎아내리며 “이번 전쟁에 추가 자금을 대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이를 조롱했다. 그는 “러시아에 무엇을 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정유소는 때리지 말라고 했다. 세계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젤렌스키)는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 우리 농민과 목축업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미국에서 특히 심각한 세계적 기름값 상승의 책임을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돌린 셈이다.

이번 거래는 디젤 판매를 시장가격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전쟁으로 삐걱대는 러시아 경제엔 반가운 선물이다. 하지만 CNN은 푸틴 대통령이 얻은 진짜 이득은 수십억달러(수조원)의 새 수입이 아니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를 고립시켜온 서방 동맹을 한가운데서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동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군사력으로는 결코 얻지 못했을 성과다.

러시아는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의 집요한 드론 공격으로 정유소들이 잇따라 마비됐다. 정유소는 러시아의 경제 엔진이자 군의 연료 탱크다. 연료 부족과 감산이 이어지자 러시아는 이달 디젤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전쟁 전 세계 2위 디젤 수출국이던 러시아 입장에선 충격적인 후퇴였다.

◇우크라 최강 무기 ‘정유소 공격’ 무력화 위기

CNN은 러시아가 약속한 디젤을 실제로 공급할 수 있을지와 무관하게,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정유소 공격을 미국의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미국의 경제적 우선순위를 러시아의 생존과 일치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거래가 디젤 가격을 크게 끌어내리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압박할 강력한 수단도 쥐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방어의 핵심인 미국의 정보 공유가 끊길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백악관 집무실 설전 직후 실제로 정보 공유를 중단한 바 있다.

이를 의식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건부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최근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리 에너지 기반시설 공격을 멈추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정유소 공격을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로선 또 한 번의 쓰라린 배신으로 비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비대칭 무기인 정유소 드론 공격이 러시아 방공망이 아니라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무력화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CNN은 크렘린궁과 거래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억누를 수 없는 욕구도 한몫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러시아 가스프롬네프트 모스크바 정유공장 일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사진=AFP)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러시아 가스프롬네프트 모스크바 정유공장 일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사진=AFP)
◇푸틴은 ‘쾌재’…러 원유 제재하던 미국, 이젠 고객

반면 러시아는 고무된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성명을 내고 “러시아는 미국 시장과 세계 시장 전반에 석유와 석유제품을 공급할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CNN은 푸틴 대통령이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우크라이나의 정유소 공격이 즉각 멈추길 원한다. 빠른 합의에 응할 우크라이나 지도자로의 교체도 함께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주 전 러시아산 원유를 사는 나라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했다. 고(故)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발의한 법이다. 그런데 이젠 미국이 직접 러시아산 연료의 고객이 됐다.

CNN은 “자원 부국 러시아에 4년 넘게 맞서온, 상처 입었지만 비교적 단결했던 서방 전선이 또 한 번 강력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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