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공공부문 총파업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억만장자들이여, 이 나라는 너희 것이 아니다'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 이날 파업은 2027년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열렸다.(사진=AFP)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9일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독일보다 137.20bp(1bp=0.01%포인트) 높았다. 같은 날 이탈리아(109.12bp)와 그리스(93.39bp)의 독일 대비 가산금리를 크게 웃돈다. 프랑스 국채의 이탈리아 대비 위험 프리미엄도 이날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프랑스 10년물 금리는 이달 5%에 육박한 뒤 4.85%로 내려왔지만, 두 달 전만 해도 4%를 밑돌았다. 불어나는 부채를 프랑스가 감당할 수 있을지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진 결과다.
이상 신호도 잇따른다. 갈수록 많은 프랑스 기업의 회사채 금리가 만기가 비슷한 국채보다 낮아졌다. 시장이 정부보다 기업을 더 믿는다는 뜻이다. CAC40지수는 최근 두 달간 약 10% 하락했다.
불안은 다른 나라로도 번지고 있다. 최근 몇 주간 이탈리아와 그리스 국채 가산금리도 올랐다. 유로화는 이달 들어 주요 10개국(G10) 통화 전부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15년 전 유로존을 흔든 그리스 재정위기의 ‘전염’ 공포가 되살아나는 이유다.
프랑스는 경제 규모 3조유로(약 4514조원)에 국가부채가 약 3조6000억유로(약 5417조원)에 이른다. 2010년 그리스 부채의 약 10배다. 다만 여전히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고, 은행들의 자본도 2010년보다 탄탄하다. 유럽의 구제 장치도 더 잘 갖춰져 있다.
미셸 사팽 전 프랑스 재무장관은 “그리스는 재정 운용 여지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아직 있지만 크게 줄었다”며 “부채 위기라기보다 재정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걸린 판돈이 훨씬 크다”고 덧붙였다.
◇라가르드 “수단 있다”…독일·ECB는 여력 부족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유럽연합(EU) 최대 경제국 독일은 극우 세력의 급부상으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고전하고 있다. ECB는 다시 고개를 든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 재무장관 출신인 라가르드 총재도 퇴진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ECB 정책위원들은 긴급 수단을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주 비공개 회의에서 유럽 재무장관들에게 “필요하면 시장을 안정시킬 수단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지난 9일 프랑스 국채 가격은 반등했다.
미하엘 토이러 독일 분데스방크 이사는 주말 독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 시스템적 국가부채 위기는 없지만 위험은 크게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프랑스에 ‘신의 손’ 같은 개입은 필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모나 델레 키아이에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유로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의 과제는 시장 규율이 어디서 끝나고 금융 불안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AFP)
큰손들은 여전히 발을 빼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중 하나인 핌코는 지난주 프랑스 국채에 대한 ‘대폭 비중 축소’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압박이 계속 커질 것으로 봤다.
프랑스 국채의 추가 금리를 노린 헤지펀드들의 캐리 트레이드도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ECB 등 당국은 헤지펀드가 국채 공급 과잉을 흡수하는 역할도 하지만 변동성을 키운다고 경고해왔다.
티에리 위즈먼 매쿼리그룹 금리 전략가는 “국채 매도와 사회 불안이 정치 양극화를 매개로 서로를 키우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짚었다.
학생 시위대는 낡은 학교 시설 개선 등을 위해 100억유로(약 15조46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가부채 이자 비용은 내년 900억유로(약 135조4131억원)를 넘어 연간 교육 예산을 웃돌 전망이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도 재정 개혁을 시도하다 물러난 두 전임자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대선 유력 주자들의 공약도 시장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내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7%로 대폭 줄이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크다. 다른 유력 주자는 부채 탕감이라는 극단적 구상까지 거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