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립학교 금지서적 1만권 돌파…日만화도 대거 퇴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2일, PM 04:4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공립학교에서 금지서적으로 지정된 책이 1년 새 1만권을 넘어섰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진격의 거인’ 등 일본 만화도 대거 포함됐다. 매체는 교육 현장에 대한 보수 진영의 개입이 거세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 진열된 만화책과 소설.(사진=AFP)
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 진열된 만화책과 소설.(사진=AFP)
미국 비영리단체 펜아메리카가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미국 공립학교에서 금지서적으로 지정된 책은 중복을 포함해 1만1982권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다다. 미국은 초·중·고교 학군별로 금지서적을 정하는데, 114개 학군이 금지 조치를 내렸다.

학군 간 중복을 빼면 7370권이다. 이 가운데엔 이사야마 하지메의 ‘진격의 거인’, 다카하시 루미코의 ‘이누야샤’도 들어 있다. 주로 성·폭력을 다루거나 성소수자·유색인종이 등장하는 책이 표적이 됐다. 인공지능(AI)에 금지서적 선정을 맡긴 학군도 있었다.

작가별로는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의 책이 312권(중복 포함)으로 가장 많았다. 상위 10명 중 3명은 일본 만화가였다. ‘불꽃 소방대’의 오쿠보 아쓰시(106권), 이사야마(89권), 다카하시(63권)다. 권수가 많은 만화 시리즈는 여러 학군에서 전권이 금지되면 순위가 높아지기 쉽다.

전체의 약 70%인 8193권은 텍사스주에서 나왔다. 전년보다 4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 9월 장서 선정 권한을 학군 교육위원회에 넘기는 주법이 시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선 동성애·낙태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간 ‘문화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께부터는 공립학교 교육과정을 바꾸라는 보수 운동이 활발해졌다. 보수 활동가들은 공립학교가 학생들에게 좌파적 가치관을 심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화당 소속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는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좌파가 우리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음란하고 저속한 책’을 치우지 않는 학교에 대해 주정부가 매기는 학교 평가 등급을 낮추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패트릭 부지사는 보수 단체 리커버 아메리카가 ‘학교에서 퇴출해야 할 책’ 2193권을 담은 목록도 소개했으며, 여기엔 마쓰이 유세이의 만화 ‘암살교실’도 포함됐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미국도서관협회(ALA)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학교 도서관에 책 퇴출을 요구한 움직임의 92%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ALA는 금지서적 운동이 “자금력이 풍부한 정치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텍사스주 휴스턴 교외 콘로 독립학군에선 2022년 보수 성향 교육위원들이 선출된 뒤 금지 조치가 늘었다. 올해까지 학군 내 도서관에서 퇴출된 책은 379권에 이른다. 지금도 한두 달에 한 번 열리는 교육위 회의에선 금지서적 지정이 단골 안건이다.

지난 5월 교육위는 1960~70년대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은 빌리 진 킹의 일생을 다룬 아동서를 금지서적으로 정했다. 동성애를 긍정하는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회의에 나온 한 노년 백인 남성은 “킹 부인의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정신질환에 걸린다. 좌파가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한 중년 백인 남성은 이 책을 남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성경을 다룬 유명 만화책 ‘액션 바이블’에도 일부다처제 언급과 폭력 묘사가 있어, 교육위 기준대로라면 금지 대상이 된다고 꼬집었다.

다른 주민은 ‘액션 바이블’이 “역사적·종교적·도덕적”인 책이라며 성적 문란을 부추기지 않는다고 맞섰다. 결국 ‘액션 바이블’은 살아남았고, 빌리 진 킹 아동서는 이달 현재까지 금지 상태다.

지난 7월엔 창고에 쌓인 금지서적을 언제까지 보관할지가 논란이 됐다. 교육위에선 보수 진영 주도의 규칙 만들기가 이어지고 있다. 테드 랜드리 부교육감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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