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남성들 '탈출 러시'…"30만명 동원령" 공포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3일, PM 02:1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에서 새 동원령을 우려한 남성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발표가 없는데도 국경을 넘는 행렬이 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규모 강제 징집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면서다.

2022년 9월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발표 직후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의 니즈니라르스 검문소로 향하는 사람들이 짐을 들고 걷고 있다.(사진=AFP)
2022년 9월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발표 직후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의 니즈니라르스 검문소로 향하는 사람들이 짐을 들고 걷고 있다.(사진=AFP)
◇동원령 발표도 없는데…국경 몰리는 남성들

12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8월 18일 하루에만 2만명이 러시아와 조지아 간 육로 국경을 넘었다. 평소의 3배다. 이와 관련, 폴리티코는 지난 8월 28일 보도에서 직전 한 주 동안 11만3000명 넘는 러시아인이 조지아로 넘어갔다고 전한 바 있다.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 직후 일주일간 조지아로 건너간 인원(10만여명)을 웃도는 규모다.

러시아 남성들의 ‘탈출 러시’로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에서도 올봄 이후 임대료가 30~50% 뛰었다.

모스크바의 광고업 종사자 드미트리(35)는 지난달 18일 하원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범죄자’라고 적은 뒤 곧장 공항으로 가 튀르키예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 선거 뒤 동원이 시작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원·자선 단체 문의도 급증했다. 동원 회피 지원단체 ‘숲으로 가라’(Idite Lesom)는 올가을 도움 요청이 올봄보다 50% 늘었다고 밝혔다. 이주 지원단체 ‘방주’(Kovcheg)에도 7월 이후 문의가 8배로 늘었다.

다만 전체 탈출 규모는 2022년보다 작다는 평가다. 방주의 아나스타샤 부라코바는 “2022년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잘 준비된 이민 물결”이라고 말했다. 2022년 부분 동원령 땐 40만명이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최대 30만명 동원”…“은밀하게 진행될 것”

새 동원령 소문은 수개월째 돌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최소 10만명,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30만명 규모의 동원을 예상했다.

크렘린궁은 동원 계획을 부인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선거 직전 “완전한 헛소리다. 러시아에 대한 정보 공격”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당국이 강하게 부인할수록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다. 2022년에도 크렘린궁은 동원령 발표 1주일 전까지 이를 부인했다. 드미트리는 “국가가 갑자기 나를 도살장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당시 동원령은 폐지되지 않아 별도 선포 없이도 동원이 가능하다. 전자 소환장, 징집·국경 당국 간 정보 공유 등 행정 체계도 정비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추가 동원이 은밀하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여름 펜자에선 사복 차림 징집관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아 가자 항의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반발을 피하려 채무자·실업자·학업 부진 학생 등에게 입대를 강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모집 할당량은 지방 주지사와 대기업 경영진에게 떨어지고, 불만이 터지면 이들이 책임진다. 이미 동원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군 전문 변호사는 랴잔의 한 교도소가 전사자 신원 확인용으로 수감자 전원의 DNA를 채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족주의 진영은 동원을 반긴다. 초국수주의 단체 루시치는 지난 7월 30일 “50만명 동원”을 촉구했다. 서방은 대규모 동원이 반발을 불러 부담이 될 것으로 봐 왔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오히려 체제 장악력을 과시하고 ‘국가적 희생’ 서사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에 복무한다!"는 문구와 군인 이미지가 담긴 대형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AFP)
◇‘병력 질’ 관건…북한군 수준이면 ‘위협’

추가 동원의 군사적 효과는 병력의 질에 달렸다. 러시아가 이전처럼 동원병을 ‘총알받이’로 쓴다면 푸틴 대통령이 얻는 건 관뿐일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반면 러시아를 위해 싸운 북한군처럼 잘 훈련된 병력이라면 우크라이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드론 효과가 낮은 시가전에서 판세를 바꿀 수 있고, 우크라이나의 새 전술까지 따라 한다면 병력 수의 우위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군 입대자는 대부분 앞날이 불투명한 저숙련 남성이라고 경제학자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는 지적했다.

한편 입대 보너스가 높은 부유한 지역으로 원정 입대하는 일도 벌어진다. 니콜라이 미트로힌 브레멘대 교수에 따르면 스베르들롭스크주의 입대 보너스는 310만루블(약 4941만원)로, 가난한 식티프카르의 4배에 가깝다. 다만 월급은 20만루블(약 319만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상관이 가로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사할 경우 유족에게 러시아 평균 연소득의 10배가 넘는 1500만루블(약 2억3910만원)이 지급된다. 이노젬체프는 이 때문에 살 의지가 약한 이들까지 가족에게 목돈을 남기려 입대한다고 꼬집었다.

거액의 보상금을 노린 사기도 잇따른다. 러시아 언론에선 군인을 유혹해 결혼한 뒤 전사 보상금을 챙기는 이른바 ‘검은 과부’ 사례가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크렘린궁이 살려는 의지가 있는 입대자를 끌어들이려 월급을 올리고 보상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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