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는 순간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 화면. 이 공격으로 12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사진=사우디 공보부 제공/AFP)
13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사우디의 지난해 국방비는 830억달러(약 111조원)에 달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집계로 세계 8위 규모다. 사우디는 미국산 전투기와 패트리엇·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첨단 방공체계를 들여왔고, 프랑스·영국에서도 각종 첨단 무기를 사들였다.
그럼에도 후티의 공격으로부터 공항과 정유시설, 송유관 같은 핵심 시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지켜야 할 곳이 너무 많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우디 국토는 미국의 약 5분의 1 크기인데, 세 방향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동쪽에선 이란이 올해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에 미사일과 드론 약 1000발을 사우디로 쐈다. 북쪽에선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가 핵심 원유 수송로인 동서 송유관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남쪽에선 후티가 예멘 산악지대의 은신처와 이동식 발사대에서 미사일을 쏘고 있다.
사우디는 후티가 쏜 미사일과 드론을 상당수 요격하고 있지만 일부는 뚫리고 있다. 한 사우디 소식통은 공격에 취약한 시설이 워낙 많아 국방부가 기존 방공체계를 어디에 배치할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미사일·드론 섞어 쏘는 후티…배후엔 이란
후티는 지난 7월 홍해에서 사우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홍해 연안의 아람코 정유시설과 사우디 공군기지를 시작으로 미사일 공격에 나섰다. 2015~2022년 사우디와의 전쟁, 이후 이어진 경제·교통 봉쇄로 후티 장악 지역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은 것이 배경이다.
후티는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장거리 드론을 한꺼번에 섞어 쏘는 방식으로 사우디 방공망을 압도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때 쓰는 전술과 비슷하다.
낮게 나는 순항미사일은 탐지와 추적이 어렵다. 후티는 비행 중 궤도를 바꿀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도 내놨다고 주장한다. 어떤 방공체계도 날아오는 모든 위협을 요격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CNN은 짚었다.
후티의 뒤에는 이란이 있어 무기 공급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유엔 전문가 패널은 2018년 국제 무기 금수 조치에도 이란산 미사일 잔해와 군용 드론이 예멘에 반입됐다고 밝혔다. 2024년에는 외부에서 후티로 넘어간 무기·기술 이전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후티의 최신 미사일 ‘하템-2’와 ‘팔레스타인-2’가 이란 무기와 설계가 매우 비슷하며, 빠르고 정확하다고 평가한다. 지난해에는 후티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뚫고 벤구리온 공항 인근에 떨어지기도 했다.
이란은 진정성 여부를 떠나 중재를 제안하고 나섰다. 아바스 아그라치 이란 외무장관은 전날 사우디와 후티 간 대화를 돕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알부카이티 후티 정치국원은 같은 날 사우디가 중재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티가 2주·1개월 휴전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며 “오늘 가능한 합의가 내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티는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의 공습 중단과 수십억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개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무기를 치켜들고 있다. 후티는 지난달 기습 공세로 예멘의 홍해 연안 전체를 장악했다.(사진=AFP)
사우디의 선택지는 마땅치 않다. 민간인이 숨진 상황에서 후티와 타협하기는 이미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공습을 강화하면 추가 보복을 불러 투자·기술·관광 대국을 꿈꾸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구상이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주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석유회의(WPC)에는 주요 기업들이 참석을 꺼렸다.
지상전으로 후티를 꺾기도 어렵다. 후티 병력은 최대 35만명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도 지난해 7주간 10억달러(약 1조3430억원) 넘게 들여 후티를 공습했지만 뿌리 뽑지 못했다고 CNN은 지적했다.
사우디는 결국 국제 연합전선 구축에 나섰다. 파키스탄은 병력 수천명을 보냈고 이집트도 요청하면 어떤 지원이든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방공무기가 부족하다. 미 국방부 감찰관은 이란과의 전쟁으로 “전략적 재고 부족”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3주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후티 직접 공습에 대해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확답을 피하고 있다.
주사우디 미국대사를 지낸 마이클 래트니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미국이 개입을 꺼리는 것은 가장 절실한 순간에 파트너를 저버렸다는 인식을 키운다”며 “결국 불완전하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외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