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이란 '그림자 선단' 제재 완화 검토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6일, AM 09:38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와 이란의 제재 회피에 활용돼 온 이른바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에 대한 제재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급등한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국제 해운시장의 운송 능력을 확대하려는 조치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인도양 라레위니옹 섬 해안의 러시아 그림자 선단 유조선. (사진=AFP)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인도양 라레위니옹 섬 해안의 러시아 그림자 선단 유조선. (사진=AFP)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이란 연계 유조선을 합법적인 해운업체에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해당 선박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국제 해운시장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합법적인 구매자가 제재 대상 유조선을 매입해 상업용으로 활용하려는 경우 거래 승인과 제재 해제 여부를 사안별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그림자 선단에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선박을 그림자 선단에서 분리해 합법적인 국제 상업 활동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안은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 1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석유회의에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참석자들에 따르면 라이트 장관은 유조선 부족이 국제 해상 운임을 끌어올리는 핵심 병목 요인이라며 제재 완화가 운송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림자 선단의 제재 완화까지 검토하는 것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 급등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이 공화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로 치솟았다. 미국의 평균 경유 가격은 이날 기준 갤런당 6.31달러로, 최근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6.53달러를 소폭 밑도는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경유 공급 부족이 내년 중반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고문을 지낸 밥 맥널리 래피던에너지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찾고 있다”며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만 그림자 선단 제재 완화가 실제 연료 가격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애스펙츠에 따르면 전 세계 유조선의 약 13~19%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다. 그러나 해당 선박 대부분이 노후화됐거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단기간에 운송 능력이 크게 늘어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나 베네수엘라와 연계돼 제재를 받은 유조선 대부분이 최근 3개월 동안에도 운항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 케이플러 역시 이번 조치가 유조선 운송 위기 해소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연료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은 선박 부족 자체보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정치권에서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산 경유 제재의 일시적 해제 방침에 대해 유럽 동맹국들과 미국 상원의 초당파 의원들은 “적국에 주는 선물이자 동맹국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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