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에 오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 AFP)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발단은 지난 15일 예산 심의였다. 총리 업무가 의회 대응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민간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하루 일정이 남성 전임자들보다 빡빡하다고 답했다. 화장과 목욕, 요리 등 일상적인 일에 하루 최소 3시간이 들어, 남성 총리보다 3~4시간을 더 쓰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차분히 앉아 국가 전략을 구상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게 요지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때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다”고 선언한 대표적 워커홀릭이다. 수면 시간은 하루 0~3시간이라고 밝혀 지난 7월에는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비서진이 모두 남성이다 보니 방송 출연 전 화장할 시간을 일정표에 넣어 두지 않는다며, 아직 ‘여성 총리’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며 농담을 얹기도 했다. 의원석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웃음 뒤의 반응은 갈렸다.
지지층은 환영했다. 보수 성향 작가 하시모토 고토에 씨는 X(옛 트위터)에서 “총리더러 민낯으로 국회에 가라는 거냐”고 되물었다. 일본 여성들이 직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가사까지 떠맡는 현실을 총리가 공개적으로 짚었다는 평가다.
반대편의 시각은 달랐다. 야당 소속 기라 요시코 참의원 의원은 NYT에 외모와 태도에 대한 기대를 총리가 ‘당연한 질서’처럼 말했다는 점이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인권 개선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도쿄 시내 역 앞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리나 스미(22세)씨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발언”이라며 왜 성별을 변명처럼 꺼내느냐고 했다. 반면 간호사 미카 오카도(27세)씨는 “자신의 일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능력에 놀랐다”며, 계산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평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내각 관료들. (사진= AFP)
논쟁에 불을 붙인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미다시나미(단정함)’ 문화가 있다. 단정한 용모를 갖추라는 사회적 압박이다. 여성에게는 적당한 화장과 하이힐, 지나치게 짧은 치마나 깊게 파인 상의 자제 등이 사실상 요구된다. 학교는 머리와 손톱, 치마 길이를 점검하고 직장은 복장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 남성에게도 기준은 있지만 시선은 여성에게 훨씬 가혹하다는 평가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립스틱을 깜빡했다며 여러 차례 사과해야 했다. 올해는 지진 직후 급히 방송에 투입된 NHK 여성 앵커가 안경을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항공(JAL)은 지난해 승무원과 지상직의 하이힐 의무를 풀고 운동화를 허용했다.
여성의 가사 부담도 만만치 않다. NYT에 따르면 일본 여성이 집안일의 4분의 3 이상을 맡는다는 추산이 있고, 가사 도우미를 쓰는 가구는 약 2%에 불과하다. 총리 관저조차 청소 도우미가 주 1회 방문할 뿐 전담 요리사가 없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평소 보인 보수적인 태도와 이번 의회 발언의 간극이 논쟁을 더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남성 중심의 황실 계승 유지 법안을 지지하고,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하는 현행 제도의 변경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본 내 대표적인 보수 성향 정치인이다. (사진= AF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