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국회에서 타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정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일본의 실질임금은 8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9년 반 만에 가장 긴 연속 증가 기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으며 실질임금 상승률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권과 비교해도 개선 폭이 두드러진다. 제2차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첫 1년간 실질임금은 0.9% 감소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서도 0.7% 줄었다.
기업 투자와 주식시장에서도 성과가 나타났다. 2025회계연도 일본 민간기업의 설비투자는 128조엔(약 1082조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춘계 노사협상 평균 임금인상률은 5.01%로 3년 연속 5%대를 유지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이달 초 사상 처음 7만선을 돌파했다. 지난 16일 종가는 6만5324.29로 1년 전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확대와 기업의 제품 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성 개선 등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경제지표 개선에 정부의 재정 지원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다카이치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약 170엔(약 1400원)으로 억제하고 전기·가스 요금 지원을 통해 가계의 물가 부담을 줄였다. 지난 7~9월에는 표준 가구 기준 약 5000엔(약 4만2000원)의 전기·가스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시행했다.
이 같은 보조금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춰 실질임금 개선에 기여했다. 임금 인상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이 축소되더라도 가계의 구매력이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적극재정에 대한 금융시장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다카이치 정권 출범 당시 1.6%대에서 꾸준히 올라 지난 9월 30년 만에 3%를 넘어섰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부담과 물가 상승,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엔화 가치도 정권 출범 당시 달러당 151엔대에서 한때 163엔대까지 하락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외환시장 개입 이후에도 달러당 160엔 안팎의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저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년 4월부터 식료품 소비세율을 1%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연말 2027회계연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방위비 증액과 감세 재원 마련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다카이치 총리도 시장의 우려를 의식하고 있다. 지난 9월 경제 각료들에게 정책에 대한 시장의 이해를 높이도록 지시했으며, 최근 소신 표명 연설에서는 ‘시장’이라는 표현을 5차례 언급했다.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은 해외 투자자를 위한 다국어 정책 설명자료를 마련하고 시장 관계자들과 의견 교환에 나섰다.
적극재정을 축소하면 임금과 소비 회복세가 꺾일 수 있지만, 재정 확대를 지속할 경우 국채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다카이치 정권은 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경기 부양 성과를 유지하는 동시에 금융시장의 신뢰까지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