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30대가 2년 동안 2300곳 넘게 입사 지원을 했지만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업들이 사람을 적게 뽑고 적게 내보내는 ‘고용 빙하기’에 ‘인공지능(AI) 한파’까지 겹치면서 대졸 청년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인력파견업체 전단을 들고 있다. (사진=AFP)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출신 잭 와이스는 2024년 프린스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300곳 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부모 집 지하실에 사는 또 한 명의 실업자”라고 농담 삼아 부른다.
와이스의 이력은 화려하다. 의사 부부의 아들로 라이스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2018년 프린스턴대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얼음 형성에 관한 그의 연구는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선정 과정에서 노벨위원회가 인용하기도 했다. 프린스턴대는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 대학 순위에서 15년 연속 1위를 지킨 명문으로, 이곳 학위는 ‘취업 보증수표’로 통해 왔다.
와이스는 처음엔 기업 연구직과 국립연구소의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노렸다. 2024년 지원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지원 상태는 2년 내내 ‘검토 중’이었는데, 그는 이달에야 그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그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으로 취업 범위를 넓혔고, 냉동 크랩케이크를 파는 회사의 식품 조리직에까지 지원했지만 끝내 답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 홀리 카베스는 아들의 지원서를 살펴봤지만 잘 쓴 지원서였다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불운도 겹쳤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72시간 안에 가상 숲 생태계를 꾸미는 컴퓨터 게임 과제를 이메일로 보냈는데, 와이스는 그중 48시간을 실제 숲에서 배낭여행 중이어서 메일을 보지 못했다. 돌아와 과제를 마쳤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맥킨지는 일정상 어려움이 있으면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엔 전문가를 고용해 AI를 학습시키는 스타트업 머코어에서 시급 70달러(약 9만3660원)짜리 일감을 얻었다. 화학공학 질문을 만들어 AI의 답을 평가하고 개선하는 일로, 주당 일하는 시간은 20시간일 때도 4시간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감은 점점 줄었고, 와이스는 지난 3월 중순 810명이 모인 슬랙(업무용 메신저) 단체방 메시지로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안 뽑고 안 자르는 美고용시장…이력서 AI가 먼저 걸러
WSJ는 와이스의 사례가 최근 몇 년간 미국 고용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저채용·저해고’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짚었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지 않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성장하는 경제에서 소외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갤럽 조사에서 지금이 좋은 일자리를 찾기 좋은 때라고 답한 미국인은 34%에 그쳤다.
최근 발표된 고용지표도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실업률은 낮지만, 올여름 전체 실업자 중 27주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빼면 10여년 만에 가장 높았다.
(사진=AFP)
채용 과정도 AI가 장악했다. 지원자들이 AI로 지원서를 대량으로 쏟아내자 기업들도 AI로 이를 걸러낸다. 채용 플랫폼 그린하우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구직자의 60% 이상이 지난 1년 새 사람 없이 AI 면접을 본 경험이 있었다.
와이스는 프린스턴대 동문들에게 직접 연락해 봐도 결국 회사 채용 사이트로 지원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면서, 이력서가 또다시 허공에 묻힐 것을 떠올리면 “심장이 내려앉는다”고 토로했다.
◇AI에 일자리 막혔는데 주가는 AI로 50번 넘게 최고치
와이스가 박사 논문 심사를 통과한 뒤 지난 2년 동안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AI 덕분에’ 50번 넘게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같은 기간 그는 단 한 곳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호황인 경제와 얼어붙은 구직 시장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그는 다음달 로스쿨 입학시험(LSAT)에 응시하기로 했다. 동시에 AI를 활용해 외래 침입 잡초를 없애는 레이저 드론을 설계하는 등 창업도 시도하고 나섰다. 부모 집에 살며 돈을 모아 투자도 한 그는 “내 주식이 계속 오르는 건 좋고 불만도 없다”면서도 “상황이 훨씬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