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맨' 트럼프도 싫어하는 관세가 있다고?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0일, PM 04:1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싫어하는 관세가 있었다.”

CNN방송은 19일(현지시간) “러시아에 대한 초고율 관세를 유지하는 문제에 이르자 ‘관세맨’은 주저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휘둘러 온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가 만든 대러 관세를 시행 직전에 멈춰 세웠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러시아산 수입품에 최고 500%,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5대 수입국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대러 제재를 유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재 발효를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 결정은 정치권 여야 모두에서 거센 반발을 불렀다.

심지어 이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직접 서명해 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고(故)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의 이름을 땄다. CNN은 “의회가 러시아의 전쟁 기계를 겨냥한 새로운 경제 무기를 만들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를 쏘지 않기로 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사랑은 유명하다. 1기 행정부 시절 스스로를 ‘관세맨’이라 불렀고, 2기 들어선 미국 제조업 부활과 마약 단속, 브라질 우방 인사에 대한 ‘마녀사냥’ 항의 등을 명분으로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퍼부었다. 지난해 관세를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엔 ‘미스터 관세’, ‘관세왕’이라는 문구를 붙인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금융사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드 밀스 워싱턴 정책 분석가는 “이번 조치는 그레이엄 제재법의 실질적인 집행을 무력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대규모 관세 부과 대상국 명단에서도 러시아를 뺐다며 이번 결정이 같은 ‘패턴’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표 시점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금요일에 뉴스를 몰아 내놓는 건 주목받고 싶지 않고 정치적으로 방어하고 싶지 않은 조치를 위한 것”이라며 “중간선거를 몇 주 앞두고 공화당이 바란 막판 메시지는 분명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화당 안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오빠의 의석을 이어받아 정식 임기에 도전하는 달린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나는 푸틴(러시아 대통령)도, 러시아도 믿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에 계속 압박을 가해 전쟁을 끝내고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쪽을 택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퇴임을 앞둔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무책임을 넘어선 처사”라며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하고 매일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러시아 독재자에게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방어에 나섰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주말 사이 기자들에게 “문제는 이 제재가 러시아만을 상대로 한 제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대한 관세가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은 60일간 제재와 관세 부과가 세계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하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러시아는 환영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중요하고 진정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썼다.

시장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대러 제재가 줄면 에너지 공급이 늘 것이란 기대에 국제유가는 이날 오전 소폭 내렸지만, 오후 들어 국제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5개월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110달러 안팎까지 다시 올랐다.

앤디 리포 리포오일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러시아는 이미 중국, 인도, 튀르키예 등에 원유를 팔고 있다”며 “면제로 더 많은 고객에게 팔기는 쉬워지겠지만 실제 시장 공급이 늘지는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관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애착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일부 분석가들에게도 의외였다. 밀스 분석가는 많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그레이엄 제재법을 느슨하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했을 뿐, 관세를 명시적으로 멈출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존 아이슬린 부국장에 따르면 미국 관세는 중국과의 잇단 유예, 연방대법원의 글로벌 관세 위법 판결 등으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1940년대부터 2024년까지의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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