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한국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제주평화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협력' 세션에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친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다.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마루젠석유(현 코스모에너지홀딩스)에서 17년간 근무했다. 그는 부친인 다케오 전 총리가 총리에 오르기 전 비서가 됐고, 정무 담당 총리 비서관을 지냈다.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53세의 나이로 옛 군마 3구에서 처음 당선된 뒤 연속 7선을 기록했다. 다케오 전 총리가 창설한 자민당 파벌 세이와카이(이후 세이와정책연구회)에 속했다. 모리 요시로 내각 때인 2000년 처음 입각해 관방장관에 올랐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으로 바뀐 후에도 관방장관직을 유지했다.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로 아소 다로, 다니가키 사다카즈, 아베 신조와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총리 취임 후에는 중의원과 참의원의 다수당이 서로 다른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국면 타개를 위해 대연정을 모색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2008년 5월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전략적 호혜관계’ 추진을 확인하는 양국간 공동성명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인 홋카이도 도야코 정상회의도 성사시켰지만, 내각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아 2008년 9월 사임을 표명했다.
그는 2012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 은퇴한 이후에도 냉각된 중·일 관계를 개선할 실마리를 계속 모색했다. 2014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