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에너지가격 상승률 9.9%p 낮았다…출구전략은 숙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7일, AM 10:02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석유 최고가격제 등 직접적인 가격관리 정책을 시행한 국가들의 에너지 가격 상승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9.9%포인트 낮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할 경우 정유사의 손실과 정부의 재정 부담이 누적될 수 있는 만큼 가격상한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취약계층과 피해 업종에 대한 선별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27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석유 최고가격제의 효과와 정책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8월 직접적인 가격관리 정책을 시행한 한국·중국·태국의 에너지 가격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평균 15.0%로 집계됐다. 비축유 방출과 한시적 감세 등으로 대응한 미국·독일의 평균 상승률 24.9%보다 9.9%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의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16.5%로 중국(11.1%)보다 높았지만 태국(17.5%)보다는 낮았다. 미국은 28.8%, 독일은 21.0%를 기록했다. 정유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관리한 일본은 같은 기간 휘발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평균 -4.5%로 나타났다.

최근 가격 흐름에서도 한국의 상대적인 안정세가 두드러졌다. 한국의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지난 8월 11.8%에서 9월 11.9%로 0.1%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29.5%에서 37.6%로 8.1%포인트 확대됐고 독일은 27.7%에서 37.1%로 9.4%포인트 상승했다. 태국 역시 14.1%에서 20.7%로 6.6%포인트 높아졌다.

3월을 기준으로 9월까지의 휘발유 가격 변화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의 휘발유 가격은 이 기간 1.6% 상승한 반면 미국은 19.7% 올랐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가격 충격이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속도와 폭을 최고가격제가 일정 부분 완충했다는 평가다.

주요국의 에너지 가격 상승률 비교(자료=산업연구원)
주요국의 에너지 가격 상승률 비교(자료=산업연구원)
정부는 지난 3월 13일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다. 주유소 판매가격이 아닌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최초 휘발유와 경유의 공급가격 상한을 각각 리터(L)당 1724원, 1713원으로 정했다. 이후 국제유가와 수급 여건에 따라 상한을 조정했으며 9월 19일부터 적용된 10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으로 설정됐다.

산업연구원은 최고가격제가 단순히 소비자의 연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물류비와 생산비 상승이 제품·서비스 가격으로 확산하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에는 지출을 조정할 시간을, 기업에는 자금조달과 계약 변경 등 경영계획을 수정할 여유를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국가별 가격 상승률 격차를 최고가격제만의 성과로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가마다 비교에 활용한 에너지 가격 지표가 다르고 환율과 세금, 국제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3월 넷째 주 1505원에서 9월 셋째 주 1358원으로 하락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 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연구원은 최고가격제의 성과를 가격 상승 자체를 억제했다기보다 추가적인 가격 충격을 완충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제도가 장기화할수록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고가격제는 국제 원유 조달비용 자체를 낮추는 정책이 아니라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의 일부를 정유사나 정부로 이전하는 방식이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공급가격 상한을 고정하면 정유사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악화하고 정부가 이를 보전하는 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

가격 통제가 장기화하면 정유사의 생산·수입 유인이 약해져 공급 차질이나 품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정책 종료 이후 그동안 억제됐던 가격 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소비자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최고가격제의 혜택이 산업 전반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다. 휘발유와 경유를 사용하는 운송·배송업이나 농어업은 직접적인 연료비 부담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나프타·가스·전력을 주로 사용하는 석유화학 등 제조업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산업연구원은 현행 정유사 공급가격 규제 방식을 유지하되 국제유가 상승분을 일정 비율만 국내 가격에 반영하는 ‘밴드형 상한’ 도입을 제안했다.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국내 가격에는 3~5%만 반영하는 방식으로 가격 충격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정유사 손실 보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실제 원유 도입가격과 운송비, 정제비, 정상마진 등을 기준으로 손실을 검증하고 정부의 실제 지급액뿐 아니라 미지급 정산액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가격 통제 범위를 일률적으로 확대하기보다는 저소득 가구와 화물운송·농어업·중소제조업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피해가 큰 부문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화학·철강 등 에너지 집약 업종에 대해서는 원료 조달과 유동성 지원을 강화하고 실제 생산량과 수출 물량 감소 여부를 기준으로 지원 필요성을 판단할 것을 당부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성과를 물가 변화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가계의 순부담과 산업의 실질 생산·수출, 공급 안정 및 재정 부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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