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하지만 AI 열풍이 흔들리게 되면 달러화는 ‘안전자산’의 지위와 가격변동성에 민감한 ‘위험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충돌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주식 시장의 지속적인 매도세가 이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미 자산을 매각하면서 달러화 선호 현상을 압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도미닉 버닝 노무라 증권 G10 외환 전략 총괄은 로이터통신에 “AI 트레이딩이 ‘해제’(Unwind)될 경우, 과거처럼 달러화가 수혜를 입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고음은 이미 시장에서 포착되고 있다. 최근 AI 기업들의 밸류에이션(평가 가치) 부담이 가중되자 안전자산 자금은 달러가 아닌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으로 쏠렸다. 달러화는 프랑스 정국 불안으로 하락한 유로화대비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정체된 상황이지만, 최근 미 주식시장으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상당수 자금이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흘러 들어왔는데, 이는 미 경제 성장률, 금리, 기술주 밸류에이션 재평가에 따라 언제든 자금 회수가 가능하단 의미이기도 하다.
에릭 넬슨 웰스파고 글로벌 외환 전략 총괄은 이같은 자금 흐름을 신흥국 시장을 흔드는 ‘핫머니’(Hot money)에 비유했다. 그는 “AI열풍이 미 경제의 강력한 성장과 물가 상승, 고금리 전망을 강화하면서 국채 수익률과 함께 달러 가치를 끌어올렸으나,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식·채권·금리가 한꺼번에 충격을 받아 달러화가 ‘3중 타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주가 폭락만으로 달러가 즉각 무너지는 건 아니다. 2000년 3월 나스닥이 고점을 찍은 후에도 달러화는 월드컴 파산 등으로 미 신용시장이 위축되기 전까지 약 2년간 강세를 유지한 바 있다. 하지만 현 AI 투자 구조는 2000년보다 미국 집중도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로이터통신은 “미 달러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97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긴 12년 연속 장기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며 “외국인 자금 역시 2000년에 비해 주식과 회사채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고 짚었다.
특히 코어위브 등 부채 부담이 큰 신흥 클라우드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급등하면서 균열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숀 오스본 스코샤은행 수석 외환 전략가는 로이터통신에 “CDS 프리미엄만 봐도 이같은 균열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고 했다.
또한 2000년 닷컴버블 당시 미국 정부가 재정 흑자를 기록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안고 있어 채권시장을 자극하지 않고 반주기적 경기 부양책을 쓸 여력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술주 하락 자체가 아니라, 이 같은 압박 자체가 신용 시장과 경제 전반의 문제로 전이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할지가 핵심 변수라고 본다. 이 경우, 달러 대신 엔화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3월처럼 달러 확보 경색으로 인한 단기적 달러 폭등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선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발표 당시 발생했던 시장 혼란 이후 달러화가 다시 글로벌 시장의 큰 위협요인으로 부상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더 많은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