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최근 토론토의 스티븐 벤모어 변호사도 의뢰인 요청대로 혼인전 계약서(혼전합의서) 초안을 작성했다가 황당한 이메일을 받았다. 의뢰인이 보낸 수정 요구 사항 13가지가 당초 작성한 계약서 전체 분량과 맞먹을 정도로 길었기 때문이다.
해당 초안은 사람이 직접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지엽적이고 오류가 많았다. 이에 벤모어 변호사는 의뢰인이 생성형 AI 챗봇을 이용했음을 직감했다. 문제는 잘못된 AI의 조언을 바로잡기 위해 인간 변호사가 설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의뢰인이 부담해야 할 자문 수임료만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이혼 소송 당사자들이 챗봇을 사용하는 이유는 ‘돈과 시간’ 때문이다. 변호사 선임료가 부담스럽고 심야에 즉각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조지아주 라그랑지에 거주하는 로건 번스(35) 씨도 이혼 및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몬태나주 변호사가 7000달러(약 970만원)의 수임료를 요구하자, 대신 월 19.99달러짜리 AI 챗봇을 구독했다.
챗봇은 아이가 6개월 이상 거주한 주에서 양육권 관할권을 가진다는 법리를 제시했고, 번스 씨는 판사에게 “재판부에 관할권이 없다”는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법원은 긴급 신청 등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번스 씨를 질책했고, 결국 그는 판사에게 사과해야 했다.
또 챗봇은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사 소송의 특성을 무시하고, 상대방의 재무제표나 지출 내역을 검증하지 않은 채 의뢰인의 일방적 주장만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근거로 “쉽게 승소할 수 있다”는 ‘환각’ 조언을 내놓기도 한다고 WSJ는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호세인 베렌지 변호사는 “챗봇의 ‘쉬운 승리’ 장담만 믿고 소송을 진행했다가 2년 동안 부양료를 과다 지급하고 재판을 망친 뒤에야 AI 오류를 깨닫고 로펌을 찾아온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다미앵 샤를로탱 겸임교수가 추적한 데이터에 따르면 판사가 가짜 판례 인용이나 AI 오류를 공식 지적한 판결이 148건에 달했다. 이중 100건 이상이 올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상대방 측이 AI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더기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며 의뢰인을 협박하듯 압박했던 사례도 나왔다. 이에 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법적 원칙을 인용한 상대방 측에게 “재발시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까지 전액 배상하게 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플로리다주에선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던 한 남성이 AI를 활용해 145건의 가처분 신청서를 내고, 항소법원에 863페이지에 달하는 AI 생성 부속 서류를 제출했다가 법원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사례도 있었다. 법원은 “향후 변호사의 서명이 없는 서류는 일체 접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과 복잡한 가사 법률 분야에서는 오히려 소송 비용을 이중으로 낭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각에선 AI 챗봇이 재판부에 악영향을 미치는 ‘소송 남용’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