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사진=한전)
김 사장이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은 한전의 재무 부담과 전력망 투자 수요가 동시에 커지고 있어서다. 한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연료비 안정과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과거 발생한 누적적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김 사장은 “전력판매 수입을 통해 적어도 누적적자가 해소돼야 한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시급한 전력망 투자를 사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 전력망 투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전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메가프로젝트 수요가 반영되면 기존에 예상했던 투자 규모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인 투자 수요는 추가 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전채 발행 한도에 대한 특례도 2027년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현재 한전은 대규모 누적적자와 부채 부담을 안고 있어 향후 전력망 투자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 사장은 “전력망 확충은 한전의 본연의 업무인데 이를 부채나 사채를 발행해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전기요금을 얼마나 현실화해야 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자체적인 재무구조 개선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총 15조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추진했으며 올해는 당초 목표인 2조2000억원을 웃도는 2조50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연료비 연동제의 실효성 강화도 제시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적절하게 반영해 연료비 급등에 따른 손실이 한전에 누적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 사장은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돼 있지만 현재의 조정 범위로는 실제 연료비 변동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며 “국제 에너지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이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산업용 전기요금 추가 인상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인상되면서 기업들의 전력비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김 사장은 “산업용에 있어서는 누적적자가 거의 해소된 상태로 알고 있다”며 “그런 부분을 감안한다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전 경영진도 장기적인 전력망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한전 관계자는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봤을 때 어느 정도 요금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인상 폭은 투자 수요와 장기적인 유가·환율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전력망 투자 확대에 따른 지역 간 형평성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력설비를 우선 확보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전력망 건설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다.
앞서 추경호 대구시장은 지난 3일 신달성 변전소 준공 시점이 기존 2028년 말에서 2030년으로 늦춰지는 문제를 두고 한전의 해명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전이 불과 1년 전 2028년 말 완공을 약속한 만큼 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필요한 변압기 조달 과정에서 다른 지역 사업에 배정된 기자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인 공사 지연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사장은 “변압기는 세계적인 수요 때문에 조달에 3년 정도가 필요하다”며 “호남권 반도체 사업은 올해 계획돼 즉각 실행해야 하는 만큼 3년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전력망 건설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지연되는 곳도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 공사 일정이 지연되는 사업의 변압기를 당겨 쓰고 해당 사업이 빨라지면 다시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호남 반도체 사업을 위해 다른 지역 공사를 지연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전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의 전력공급 목표인 2028년 말까지 관련 송전망 건설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은 장록습지 일대 송전선로 경과지를 올해 말까지 확정하고 내년 초 착공하면 일정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별 산업용 전기요금제 역시 한전의 재무 부담을 고려해야 할 변수로 꼽혔다. 한전의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별 산업용 전기요금제도 한전의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가량 낮추는 방안이 시행되면 산업계의 연간 전기요금 부담이 약 2조8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곧 한전의 수입 감소를 의미한다.
김 사장은 “지역별 도매전력가격제 도입과 정부 재정지원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면서도 “지역별 요금제가 지속가능하려면 한전의 누적적자 해소 문제 등을 포함해 정부와 전기요금 체계 전반을 종합적으로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의 협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실무자들이 의견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공식 논의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한 정부와의 공식 협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4%를 수입하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낮은 전기요금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매진하면서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기업의 길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