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AI '올인' 베팅, 어떻게 무너졌나

해외

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8일, AM 11:2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중동 전쟁과 치솟는 차입 비용에도 올해 미국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인공지능(AI) 낙관론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민주당이 압승한 미국 중간선거의 정치적 후폭풍이 기폭제가 됐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AFP)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AFP)
◇하루새 4365조원 증발…반도체 역대 2번째 폭락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5일 미국 증시에선 3조2000억달러(약 4365조원)가 증발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지수는 5일 6% 넘게 급락한 뒤 전날 1.4% 반등했지만, 주간 기준으로는 4.9% 하락했다.

반도체주 충격은 더 컸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5일 하루에만 12.2% 폭락했다. 1994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이 덮친 2020년 3월 16일(-15.9%)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하루 낙폭으로, 닷컴버블 붕괴 당시인 2000년 4월 14일(-11.6%)보다도 컸다.

한 대형은행의 주식 담당 고위 관계자는 “화학반응과 같다. 요소 하나, 둘, 셋이 모이면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번 선거가 폭발을 일으킨 요소였다”고 말했다.

시장은 처음엔 선거 결과를 반겼다. 민주당의 ‘블루 스윕’(상·하원 동시 장악)으로 불확실성이 걷히자 투자자들은 선거 전 걸어둔 위험회피(헤지) 포지션을 풀고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이란 전쟁 종식 기대에 유가도 급락했다.

씨티그룹은 지난 4일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위험을 충분히 줄인 만큼 주가는 더 오를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5일 유가가 반등하고, 새로 선출된 민주당 인사들이 AI 인프라 구축 속도를 늦출 것이란 우려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일각에선 내년 AI 투자 규모가 1조달러(약 136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해 왔다. 텍사스 등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억제할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 주지사들이 당선된 데다, 민주당 의회의 AI 반발 가능성까지 커졌다.

루도빅 수브랑 알리안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간선거가 AI에 대한 백지수표라는 가정을 끝냈다”며 “시장은 ‘하늘이 한계’라는 말이 가치평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꼬집었다.

◇헤지펀드 레버리지 청산·개미 이탈…코로나 이후 최악

매도세를 키운 건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였다. 주가가 떨어지자 헤지펀드들은 차입을 동원한 기술주 포지션을 서둘러 청산했다.

JP모건은 5일 헤지펀드 고객들이 1.6% 손실을 내 지난해 ‘해방의 날’ 관세 발표 이후 하루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일간 헤지펀드의 차입 축소 속도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빨랐다.

헤지펀드 월아이는 주식 사업 일부를 정리하고 자금 일부를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하락장마다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도 이번엔 발을 뺐다. 반다리서치에 따르면 5일 개장 후 2시간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개별 종목에서 3억8800만달러(약 5292억원)를 순매도했다. 한때 코로나19 이후 최대 개인 순매도를 기록할 기세였다.

AI는 그동안 반도체 등 관련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경제 성장 전망도 떠받쳐 왔다. 이젠 이 두 힘이 거꾸로 작용할 위험에 처했다.

최근 3분기 실적 시즌에서 빅테크들이 막대한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도 핵심 사업 매출은 부진했고, ‘네오클라우드’ 등 AI 관련 고위험 기업의 채권 가격도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티븐 존스 에이곤자산운용 CIO는 “지연과 각종 제약이 늘면서 이 모든 설비투자를 실행하기가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점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진=AFP)
(사진=AFP)
◇“과민반응” vs “AI 붐 정점”

전날 기술주가 반등하자 일각에선 정치 리스크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나왔다. 조 지들 크레셋 수석시장전략가는 “이번 선거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표였지, AI에 대한 기소가 아니었다”며 이미 진행 중인 건설이 중단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지타니아 칸다리 모건스탠리자산운용 부CIO도 “주가 움직임의 규모가 펀더멘털(기초여건)에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커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날 발표된 10월 미국 비농업 일자리가 16만5000개 늘어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돈 것도 경제의 견조함을 보여줬다.

반면 AI 붐이 정점을 찍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니킬 스리니바산 벤자이텐매크로 CIO는 “AI 트레이드의 가치가 떨어졌다”며 “시장은 이번주나 다음주 반등할 수 있지만 앞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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