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강대강 대치' 속 尹계엄…李에 대권 날개 달아줬다

정치

이데일리,

2025년 6월 04일, 오전 04:50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대 총선 직후인 지난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제21대 대선은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만든 보궐선거였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의 대패 이후에도 거대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며 협치를 거부했고, 이는 더불어민주당과의 강대강 대치 정국을 고착화시켰다. 그리고 결국 불법적 비상계엄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고,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던 이재명 당선인에게 대권의 길을 열어줬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거대 야당이라는 벽을 맞닥뜨렸다. 대선 승리를 발판 삼아 2022년 6월 열린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거뒀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완승을 거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선거에서 윤 전 대통령의 대선 맞상대였던 이재명 당선인이 보궐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 당선인은 두 달 후인 8월 당 안팎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에 올랐다. 0.73% 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렸던 21대 대선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정국이 다시 ‘윤석열 대 이재명’ 구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정권 초기, 그리고 지방선거 대승을 발판 삼아 정국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현실에서 윤석열정부는 제1야당이던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법률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었다. 정부를 책임지는 윤 전 대통령 입장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지만, 협치는 실종됐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전 대통령은 국민 대의기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야당과의 협치 대신, 총선을 기다렸다. 총선 승리를 통해 여소야대를 여대야소 구조로 탈바꿈해 본격적인 정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사이 검찰은 지속적으로 이재명 당선인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반복했고, 민주당은 이를 이유로 더욱 강력한 대여투쟁을 이어나갔다.

◇尹, 여소야대 현실 외면한채 野 철저히 무시 일관

2023년 2월 헌정사 최초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기각돼 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도 없이 마무리됐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재명 당선인의 사법리스크와 국회에서 이를 방어하는 민주당을 향해 “방탄국회를 하고 있다”며 공세를 폈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검찰은 같은 해 9월 이재명 당선인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재명 당선인이 단식까지 나서며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내에 호소했지만 “더 이상 방탄은 안 된다”며 최소 29명이 가결에 동참해 체포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당내 갈등이 폭발하고 비명계 일부 의원들이 살해 협박까지 받았지만, 결국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살아 돌아온 이재명 당선인은 당내 영향력을 더욱 높이며, 이를 발판 삼아 강력한 대여공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22대 총선을 반년가량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정부의 각종 리스크가 우후죽순 터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였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하자, 3개월 후 그를 사면·복권시킨 후 보궐선거 출마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사면·복권시켜 다시 후보로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도 윤석열정부는 김건희 여사 각종 리스크 부각,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논란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22대 총선에서 과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108석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21대 총선에 비해 5석이 더 늘었지만, 민주화 이후 집권여당으로선 최악의 패배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 마련된 서초4동 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선 대승으로 이재명 당선인은 일찌감치 차기 대권의 유력 후보군으로 우뚝 올라섰다. 그는 이를 발판 삼아 22대 국회에서보다 더 강력하게 대여투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과의 대화를 거부했고 정국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권에선 윤 전 대통령이 이재명 당선인의 사법리스크 유죄 확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尹 일방통행에 野 ‘탄핵소추’ 카드 맞불…정국 대치 반복

정부·여당의 일방통행이 이어지자 야당은 초강경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국회의 합법적 권한을 활용해 민주당이 사용한 카드는 ‘탄핵소추’였다.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경우 곧바로 공무원의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22대 총선 이전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주로 추진했던 것과 달리, 주요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안 카드를 꺼내 들며 윤석열정부와의 대립각은 더욱 커졌다. 방송통신위원장들에 대한 연이은 탄핵 추진에 이어 최재해 감사원장과 주요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까지 추진한 것이다.

야당의 초강경 대여투쟁 속에 윤 전 대통령은 대화가 아닌 ‘12.3 비상계엄’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선택했다. 윤 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막으려 무장한 군경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시민들의 저항, 계엄군의 소극적 지시 이행까지 맞물리며 계엄은 불과 5시간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11일 만인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재판소 심리가 예상을 뛰어넘게 4개월 가까이 진행되며, 그 사이 국론은 걷잡을 수 없이 분열됐다. 결국 헌재는 4월 4일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고, 조기 대선을 확정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결과적으로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던 이 당선인에게 대권의 길을 열어줬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가장 큰 사법리스크인 선거법 사건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지난달 1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사법리스크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에, 통상적인 절차로 진행될 경우 이 당선인은 고등법원과 대법원 재상고심을 거쳐 유죄가 확정되는 수순을 거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조기 대선에서 승리가 유력해지며, 이 당선인의 사법리스크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가게 될 전망이다.

특히 민주당은 대선 후 이 당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선거법 조항을 삭제,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단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법개정이 마무리되면 이 당선인은 면소 판결로 선거법 사법리스크를 털어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