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웃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그러면서 “‘반미가 아니냐? 미국 입국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던데?’라는 요지의 질문을 해주셨는데, 저로서는 시중에서 제기된 이슈 가운데 답변과 해명이 필요한 질문에 설명할 기회가 생겨 오히려 고마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기자단을 대표해서 질문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며 “후보자가 어떤 질문에도 답할 의무가 있듯, 기자도 국민을 대신해 어떤 질문이든 해야할 권리와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 후보자는 지난 10일 자신이 ‘반미주의자’라는 정치권 일각의 공세에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 사례 등을 들며 일축한 바 있다.
이날 김 후보자는 기자간담회에서 “(김 후보자가) 미국 입국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그는 질문의 요지를 잠시 곰곰이 생각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누가 진짜로 이런 질문을 하셨다면 조금 더 저에 대해 조사를 하셨으면 좋겠다”며 답변을 이어갔다.
김 후보자는 “제가 동년배 중에서 여행 자율화가 된 이후에 비교적 해외경험을 빨리 많이 한 사람에 속하는 거 같다”며 “그래서 미국에서 비교적 다양한 공부를 했고, 공교롭게도 전임 총리와 같은 학교(하버드대)도 다녔고, 그리고 미국 헌법에 관심 있어서 미국 변호사 자격도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세계에 대한 수출품이 헌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헌법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갖고 있고 미국 헌법 정신이 담긴 형사소송 절차에도 깊은 관심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 중에 그런 미국 헌법의 정신이나 형사소송 절차의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도 상당히 참고할 바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마 제가 여러가지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서 국무총리로서 역할하는데, 한미관계를 풀어가는데 일정한 기여로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반미주의자’라는 의혹을 받게 된 계기인 1985년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 대해선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사실상 최초로 광주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점거농성을 벌여) 미국이 과연 당시 전두환 노태우 씨에 의한 한국군의 군사이동을 허용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문제는 미국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한미동맹 국가이자 우방이자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이 어떠한 민주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나를 물은 사건” 이라며 “더 근본적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리는데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비교적 미국에 대해 이해가 깊고, 트럼프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도 꽤 오래 개인적인 교분이 있다”며 “제가 총리로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한미 관계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일정한 기여로 작동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나는 한국 정치의 주요한 역할이 각 주변국과 그 주변국이 가장 중시하는 논리에 따라서 대화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