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미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방명록에 서명하려고 펜을 잡으려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뒤에서 의자를 당겨 주고 있다. (백악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9.1/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일주일여 앞두고 한미 관세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 조달계획을 두고 한미가 의견차를 좁혀가며 합의에 근접한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양자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관세 협상에 관한 큰 틀의 합의 메시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세부 협상 문구 조율이 필요해 최종 관세 협정문 서명은 APEC 이후가 유력하게 부상한다.
李대통령, 방미 협상팀 대면보고…최종 조율안 전략 다듬기
2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방미 일정을 마친 협상단으로부터 이날 중 양국 실무협의 결과를 대면보고 받을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전날 귀국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협상을 주도해 온 김용범 정책실장·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핵심 참모들과 진행 경과와 미국 측 기류, 향후 협상 전략 등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3500억 달러 전액 현금 선불을 요구해 온 미국은 외환시장 안정성 등을 내세워 설득해 온 우리 측 입장을 일부 수용해 직접투자액 규모 및 분할 투자 방안에 대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 자금 운용 및 수익 배분 등 핵심 쟁점 사항에서 적지 않은 진전을 보이며 타협점 마련에 근접해 가는 분위기이다.
김 장관은 전날 인천공항 귀국길에서 관세 협상과 관련 "한국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찾기 위해 마지막 움직임에 있다"며 "미국이 상당 부분 우리 의견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한국의 외환시장에 대해서 부담을 주는 선에서는 안 된다는 양측의 컨센서스가 있었다"며 "외환시장 관련한 내용이 협상의 상당한 허들이었는데, 양측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러 쟁점이 합의점에 이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미 협상창구 '러트닉' 일원화…협상팀 집중 설득·공략
한미 관세협상이 급물을 탈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미국 측의 협상 창구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으로 일원화된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강성 매파'로 꼽히지만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분산돼 논의 진척이 더뎠던 데 비해선 효율적·집중적 협의가 가능해진 측면이 크다.
또한 베선트 장관과 그리어 대표와 공감대를 이뤄도 결국 최종 합의의 키를 쥔 러트닉 장관 설득이 관건인 만큼, 우리 협상 역량을 러트닉 장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미 정상간 '톱다운' 담판 부상…APEC 이후 후속 협의 이어갈듯
이 대통령은 이르면 이날 중 협상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협상 최종 조율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큰 이견이 좁혀진 만큼 세부 실무단위 조율은 한미 양 정상이 참석하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타결안을 내놓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오는 29~30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 때 합의문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삼되, 정상회담 전 완전한 서면 합의가 어렵다면 조건부 수준의 합의 방안도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 정상이 APEC 정상회의 계기 양자회담을 통해 관세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협상이 진행 중이며 세부 내용은 확정된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 중이다.
협상 실무선에서는 MOU 서명 여부, 원자력 협력 조항 등이 아직 조율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측의 제재로 수출판로에 어려움을움을 겪는 미국산 대두 수입확대도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핵 연료 재처리 등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는 양국이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음에도 관세 협상과 별개로 중장기 과제로 다뤄나갈 것으로 보인다. 안보동맹과 미국의 대중 전략, 및 인·태 지역 구도와도 맞물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보다 신중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대통령실은 관세협상 매듭과 함께 외교안보를 포괄하는 추가 한미 협력 방안 논의를 위해 APEC 이후에도 경제·안보 라인의 대미 소통을 활발히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협상) 교착 상태에서 몇 가지 실무적인 협의가 진전됐다고는 본다"면서도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김용범 실장이 한두 번 더 가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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