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제안 국회 토론회(김윤 의원실 제공)
"우리나라는 병원 접근성은 세계 최고지만, 만성질환을 조절하고 삶을 관리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는 일차의료 기능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제안이 쏟아졌다. 이날 토론회는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7명이 공동주최했다. 전문가들은 치료는 반복되지만 조정은 사라진 현 의료체계를 지적하며, 복합질환자를 위한 관리 중심 체계가 지역 단위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기대수명이나 의료 접근성 지표는 높지만, 만성질환 관리에서는 성과가 떨어진다"며 "국내 의료는 여러 기관을 오가는 ‘다기관 진료’ 구조로, 질환별로 제도는 쪼개졌고 이를 통합 조정하는 주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환자가 정형외과·내과·신경과를 반복 방문하며 중복 처방과 검사에 노출되지만, 이를 통합해 약물이나 서비스 전반을 조정해주는 시스템이 없다"며 "결국 비용은 오르고 건강은 악화되는 이중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도입한다. 박은정 복지부 지역의료혁신과장은 "지금의 의료체계는 환자가 증상이 생길 때마다 병원을 찾는 구조"라며 "앞으로는 지역 주치의 중심으로 건강 상태를 상시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환자 맞춤형 진료구조'를 제시했다. 초기 포괄평가를 통해 질환 수, 기능 상태, 돌봄 필요도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리강도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건강한 주민은 생활습관 관리 위주, 만성질환자는 정기모니터링·약물조정 중심, 기능 저하자는 방문진료·재택의료와 돌봄 연계 중심으로 설계됐다.
복지부는 또 단일 표준모델을 전국에 적용하지 않고, 지역별 의료자원과 인구구조에 따라 다양한 모델을 병행해 운영할 방침이다. 의원 중심형, 2차병원 연계형, 지자체·공공의료 주도형 등 여러 모델을 시범사업 단계에서 동시에 실험하고 비교하겠다는 전략이다.
보상체계 개편도 병행된다. 복지부는 기존 행위별 수가제가 진료량 확대만 유도했다며, 이번엔 '환자 등록과 관리 지속성'을 보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기본 정액관리료에 운영 지원을 더하고, 환자 상태 안정화 등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 원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통합 플랫폼도 제안했다. 가입자의 식이·운동·약물 등 생활정보를 모바일로 수집해 건강관리 가이드를 제공하고, 여기에 별도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네트워크 내 전자의무기록(EMR)과 모바일 헬스 데이터를 상호 연계할 수 있도록 정보 교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급여 범위와 보상방식도 지역 네트워크 단위로 유연하게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 원장은 "지역 위원회가 급여 범위를 정하고, 기관 간 보상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네트워크 간 목표 의료비를 설정하고, 달성할 경우 절감액의 50~8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서비스의 질, 환자 만족도, 환자 안전을 평가해 일정 기준을 달성한 기관에 별도 보상을 부여하는 방식도 나왔다.
의료계는 기본 방향엔 공감하면서도 제도 설계가 참여자 중심으로 단순하고 실효성 있게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장애인 주치의, 방문진료 시범사업 모두 설계는 좋았지만 참여율이 1%도 되지 않았다"며 "이번엔 단순 구조와 충분한 재정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은 "고령·복합질환 환자를 단일 주치의가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환자군 분류별로 진료·조정·연계 역할을 나누고, 다학제 기반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대학 교수는 "의사만 중심이 되는 설계는 한계가 있다"며 "간호사·약사·사회복지사 등 다직종의 역할과 책임, 보상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이번 사업의 목적은 정답을 미리 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가 실제로 '관리받고 있다'고 체감하는 구조를 찾는 데 있"며 "확대 속도보다 학습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rnkim@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