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을 앞세운 이재명 정부가 집권 반년을 넘겼다. 비명 인사의 적극적 기용,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됐던 장관의 유임 등 실용 행보를 보였던 이 대통령은 각 부처별 업무보고에서도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전문성이 있는 인사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업무 파악이 미진한 기관장은 전임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호된 질책을 피하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쓴다는 의중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실용 행보는 외교와 경제에서도 잘 나타났다. 과거사와 분리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고, 대미·대중 균형 외교로 한국의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다. ‘코스피 5000’ 등 실질적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책을 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부·중기부·지재처 업무보고에서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에게 질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소통’을 강조했다. 자신을 비롯한 관료들의 업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국민들의 판단을 받겠다는 의도다. 덕분에 기관장별로 평가는 엇갈렸다. 한 예로 과거 보수정당 3선 중진의원 출신이었던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호된 질책을 받았다. 같은 당 재선 의원 출신이었던 함진규 도로교통공사 사장은 이 대통령의 송곳 질문을 무난하게 선방했다. 보수정부 때 임명된 인사라고 해도 업무 파악이 제대로 돼 있으면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지난 19일 성평등가족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과 조우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신 원장과 설전을 벌였던 악연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신 원장에게 ‘오랜만이다’라고 인사를 전한 뒤 별달리 지적할 만한 이슈가 없다며 넘어갔다.
여권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이재명 정부의 실용 인사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정권에 선임된 사람이라고 해도 능력이 있으면 그대로 쓴다”면서 “감사원·검찰 등 사정기관을 통해 끌어내리려 했던 이전 정부와는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 인사도 가리지 않고 쓴다는 철학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으로 이미 드러났다. 송 장관은 민주당이 발의했던 양곡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지만 이 대통령의 인정을 받았다. 농식품부 장관을 희망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많았지만 본인의 생각을 관철시킨 것이다.
우상호 정무수석도 이 대통령의 인사 기조를 놓고 ‘실용’이라고 평가했다. 숱한 핵심 친명(친이재명) 인사를 놓아두고 계파색이 덜한 강훈식 비서실장을 기용한 점이 그 예로 지목됐다.
◇외교와 경제에서 드러난 실용
이 대통령의 실용은 외교, 특히 대일 관계에서 두드러졌다. ‘가치 외교’나 ‘선명성 경쟁’보다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는 기조다. 이를 반영하듯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 일본을 먼저 찾았다. 미국을 먼저 찾는 이전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른 행보다.
이때 이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어 한일 관계 개선을 하는 동시에 대미 관세 협상과 관련된 여러 조언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하되, 경제·국제 협력과는 구별하겠다는 의도다.
대미 관계에 있어서도 실용은 강조됐다. 안보 동맹의 틀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때로는 ‘협상장을 떠날 수 있다’는 벼랑끝 전술을 쓰며 미국을 설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힘든 협상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코스 피5000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을 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면서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개발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국토 정책도 야당의 아이디어가 좋으면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 최근 이 대통령은 대전·충남 통합안에 적극 찬성했다.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이 아이디어는 해당 지역 국민의힘 단체장들이 제안한 것으로,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특별법 형태로 발의까지 했다.
다만 대야 관계에 있어서는 이 대통령의 실용 노선이 흐릿해진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에 대한 판단을 두고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실용주의가 맞긴 하지만, 내란 청산을 전제로 한 반쪽 동행”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