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과 유엔사 MDL 달라…10년이나 정말 몰랐나[김관용의 軍界一學]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2월 28일, 오전 08:20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군사분계선(MDL)은 남북간 정전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선입니다. 이곳에서의 병력 이동이나 경고 방송, 경고사격은 자칫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수도 있는 매우 민감한 선입니다. 그런데 이 MDL을 놓고 우리 군과 유엔군사령부가 서로 다른 좌표 기준을 적용해 수년째 작전을 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유엔사와 MDL 좌표 불일치율 60%

우리 군은 지난 9월 이후 북한군의 MDL 침범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우리 군 군사지도상 MDL과 유엔사 기준선을 모두 검토한 뒤 이 가운데 더 남쪽에 있는 선을 기준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명분은 우발적 충돌 방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군의 경고사격이나 대응에 대해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 소지를 문제 삼아온 현실을 감안한 ‘마찰 최소화용’ 조치에 가깝습니다.

비무장지대(DMZ) 내 GP에서 우리 군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출처=육군 홈페이지)
물론 1953년 정전 당시 설치된 1292개의 MDL 표지판은 대부분 유실돼 현재 식별 가능한 것은 200여 개에 불과합니다. 당시 사용된 군사지도 역시 축척 5만 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우리 군의 군사지도는 2004년 MDL 표지판 측정값을 기준으로 작성돼 2011년부터 적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유엔사 기준선은 2014~2015년 재측량을 거쳐 2016년에 확정됐습니다. 문제는 현재 두 지도 사이의 MDL 위칫값 불일치 비율이 약 60%에 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남북으로 수십 미터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 당국은 “과거에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북한의 MDL 일대에서의 국경선화 작업으로 북한군 침범이 잦아지면서 인지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MDL 좌표 불일치는 북한의 행동 변화로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2016년 유엔사 기준선이 확정된 시점부터 구조적으로 존재해 온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까지 핵심 기준선을 점검하지 않았다는 해명인데, 관리가 아니라 방기였음을 자인하는 것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군사합의 이행 때도 인지 못했나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왜 이런 상황이 10년 가까이 방치됐느냐는 것입니다.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행 과정 당시를 기억해 보면, MDL 인근에서 남북 군이 직접 대면하고, 오솔길과 도로를 연결하며, 공동 유해 발굴과 감시초소(GP) 철수 등 수많은 접촉과 협력을 진행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MDL 좌표 간극 문제는 충분히 인지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2018년 11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도로 연결 작업이 진행될 당시 촬영된 사진에는 새로 설치된 MDL 표식을 기준으로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이 도로 개설 작업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현장에서 MDL 표식을 새로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기존 기준선의 모호함이나 불일치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혹여나 가시적 성과에 매몰돼 그 모든 활동의 전제가 되는 MDL 좌표 체계의 정합성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닌지 의문입니다. 당시에도 분명 유엔사는 MDL 관련 의견을 개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우리 정부의 책임 인식입니다. 최근 국방부 당국자는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9·19 군사합의 이행 과정에서 MDL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왜 정리가 안 됐는지 저도 궁금하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책임 회피에 가까운 발언처럼 들립니다. 9·19 군사합의 이행을 주도했던 인사 중 일부는 현재도 국가 안보 의사결정의 핵심 위치에 있습니다. 또 일부는 여당 내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이들에게 전화 한 통, 확인 한 번 했었는지 의문입니다.

지난 2018년 11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도로개설을 위한 작업 당시 모습이다. 새로 설치한 군사분계선(MDL) 표식을 기준으로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이 도로연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유엔사와 소통 채널 사실상 부재

군 당국은 최근 북한에 MDL 기준선 재설정을 논의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북측은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변경된 경계작전 지침이 ‘사격 자제’나 ‘소극 대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정전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 군과 유엔사가 동일한 MDL을 기준으로 작전하고 있는가입니다. 정전 체제의 관리 주체인 유엔사와 기준선 조차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측에 재설정을 제의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유엔사와는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비무장지대(DMZ) 출입을 놓고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여당은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상 DMZ 관리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번 MDL 불일치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전 체제 관리에 대한 인식 차이와 소통 부재가 누적된 결과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유엔사와의 소통 문제가 지적됩니다. 유엔사는 그간 우리 군에 책임 있는 한국군 장성을 참모로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직 문제 등을 이유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 군 소장 1명이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보직돼 있지만, 실질적 협의나 정책 조율이 아닌 주 1회 회의 참석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정전 체제의 핵심 쟁점을 논의할 상시 협의 창구가 사실상 비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장병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작전을 이어왔습니다. MDL 좌표처럼 정전 체제의 핵심 쟁점을 놓고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유엔군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까지 겸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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