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는 경제와 기업을 최우선으로[안종범의 나라살림]

정치

이데일리,

2026년 1월 02일, 오전 09:13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2026년은 대한민국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역사적인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새롭게 도래한 보호무역 국제경제질서라는 외부적 위험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풀기 어려운 여러 문제를 안고 시작하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고 포퓰리즘이 대내외적 위험에 대처하는 정책적 노력을 훼손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는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을 1%대 후반에서 2%대 초반으로 예상한다. 수치만 보면 ‘침체 탈출’의 신호처럼 보이지만 이 숫자들은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과거와 같은 자유무역 질서가 아니라 보호무역이 구조화한 세계에서 간신히 만들어지는 성장이라는 점이다. 이제 보호무역은 더 이상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의 디폴트가 됐다. 미국은 ‘국가안보’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관세와 보조금을 동시에 활용하는 이중 전략을 제도화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압박의 대상이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연대 전략이다.

이제 다시 한일 경제협력에 주목해야 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한국과 일본은 ‘미래지향적 협력’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했다. 가장 구체적인 정책 실험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였다. 2003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공식 협상을 개시할 당시 이는 단순한 양자 협정을 넘어 동북아 경제통합의 출발점으로 확장될 수 있는 시금석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좌절이었다. 과거사 문제와 외교적 불신이 겹치면서 경제 논의는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결국 2004년 이후 한일 FTA 협상은 중단됐다.

이후 추진된 한중일 FTA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한중일 FTA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대형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산업구조의 차이, 중국의 국유기업 문제, 기술·보조금·시장개방을 둘러싼 이견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외부 변수 속에서 실질적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이 일련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적 환경이 흔들릴수록 이를 완충할 민간 협력의 축, 즉 기업과 산업 현장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정부 간 협상이 멈출 때도 기업 간 협력과 공급망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한일 간 경제협력 노력이 중단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계기가 생겼다. 바로 한일 모두 유사한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5년 이후 재편된 미국의 통상정책은 관세를 무기로 한국과 일본의 투자와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끌어들였다. 한국은 자동차·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및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를 제시했고 일본은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550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대출 패키지를 수용했다. 금액만 보면 일본이 더 크지만 한국은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고 한미 통화 스와프가 상설화돼 있지 않아 외환 변동성과 금융 리스크를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일의 이해관계는 다시 만난다. 각자도생식으로 대응할 경우 양국은 반복적으로 미국의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급망, 투자, 기술을 엮은 공동보조와 전략적 조율이 가능하다면 한국과 일본은 경쟁자이기 이전에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오면서 한일경제공동체를 추진하자고 제안해 왔다. 최근 여러 국제 인터뷰와 경제 포럼에서 그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느슨한 협력으로는 부족하며 유럽연합(EU)에 가까운 실질적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일경제공동체는 관세·보조금·기술이 뒤엉킨 세계에서 한일 양국의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실제로 한일은 이미 산업적으로 깊이 얽혀 있다. 반도체 소재, 배터리 부품, 정밀기계, 인공지능(AI) 인프라에서 양국은 단일 가치사슬처럼 움직인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일 간 경제 공조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급망 공동 관리의 고도화다.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서 공동 비축과 위기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여기에 AI 기반 공급망 예측과 조기경보 시스템을 결합해야 한다. 둘째, 통상·관세 협상의 공동 보조와 금융·통화 협력의 단계적 확대다. 통화 스와프, 공동 펀드, 녹색·전환금융 협력은 관세와 금융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판이 된다. 셋째, AI 공동협업과 데이터 연계다. 한국은 방대한 공공 데이터와 이를 민간과 연결하는 디지털플랫폼 정부의 경험을 축적해 왔고 일본은 정밀 제조·로봇·산업 데이터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이 두 자산을 결합한 한일 AI 공동협업은 기존 산업 협력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AI 기반의 실질적 한일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현실적 경로가 될 것이다. 한일경제공동체는 정부가 설계하고 기업이 실행하며 사회가 지지해야 작동한다. 그러나 현실의 가장 큰 장애는 여전히 국내에 있다. 반일 정서가 정치적 동원 수단이 되면서 경제가 대가를 치르는 상황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국가 전략을 감정 위에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외교는 원칙으로, 경제는 실용으로 접근해야 한다.

2026년 한국 경제를 살리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정부와 정치가 기업을 통제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기업은 이제 국가 생존과 발전의 실행 주체다. 친기업 정책은 특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2026년은 정치보다 경제를, 이익집단보다 기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반일과 친일이라는 낡은 구도가 아니라 친성장·친기업·친연대라는 새로운 국민 정서가 필요하다. 보호무역의 파도가 높아질수록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고립이 아니라 전략적 연대다. 한일경제공동체는 그 현실적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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