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에 與 내홍…호남·수도권 충돌

정치

이데일리,

2026년 1월 08일, 오후 06:59

[이데일리 조용석 황병서 김한영 기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전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호영 의원을 비롯한 호남 지역 정치권과 경기도·용인 지역 기반 정치인들 간 힘겨루기가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경쟁력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클러스터 조성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찾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죽능리 일원의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SK하이닉스 1기 팹 건물이 일부 올라서고 있다. 1기 팹에는 클린룸 기준 3개층이 들어설 예정이다.(사진=방인권 기자)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불 지핀 與 호남 정치인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안 의원은 전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용인 반도체 전북 이전 이슈가 전국적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특히 새만금 이전은 절대 안 된다는 기사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쏟아지고 있다”며 “전북의 미래를 위한 싸움에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전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 의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새만금이 용인보다 전력 수급이 용이하고 재생에너지도 풍부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도 충족할 수 있다는 이유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새만금 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 의원은 이달 초 “윤석열 내란을 끝내는 길은 용인 반도체 삼성전자의 전북 이전”이라고 주장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호남 지역 민주당 정치인들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 최근 윤준병 민주당 전북도당 위원장은 전북도당 산하에 ‘용인 반도체 삼성전자 전북 이전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또 지난 6일에는 민주당 호남발전특위 소속 이병훈 수석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증설 팹은 호남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기도와 용인 지역 정치인들의 반발도 거세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최근 SNS를 통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뚫고 유치한 역작”이라며 “경기도가 그 성과를 이어받아 전력·용수·교통 등 산업기반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이전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양기대 민주당 의원 역시 호남권의 이전 주장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과 국가 신뢰를 훼손할 뿐”이라고 힐난했다.

민주당 용인 지역 국회의원인 이상식·손명수·부승찬·이언주 의원도 지난달 30일 “기반 공사가 한창인 시점에 터져 나온 현실성 없는 이전론은 국가 전략산업을 스스로 흔드는 자해 행위”라며 정부가 이를 정리해줄 것으로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 기후부 장관 실언에 李대통령 발언까지 혼란 키워

약 10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예상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만드는 사업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총 10기의 팹(Fab·반도체 생산라인)을 만든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월부터 착공을 시작해 골조 및 기초 공사를 진행 중이고,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지난달 LH와 부지 매입 계약 체결을 마쳤다. 공사가 본궤도에 오른 만큼 사실상 이전을 논의할 시기는 지났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거론하며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지역으로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이후 기후부에서는 설명자료를 통해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한다)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를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을 설명한 것”이라고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신년사 역시 이전 논란을 키웠다. 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역균형 발전을 강조하며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다만 이전을 두고는 여당 내부뿐 아니라 야당의 반대도 크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게 아니라 ‘과학’으로 짓는 것”이라며 “정말 에너지 비용과 송전망이 문제라면 태양광의 호남이 아니라 원전이 밀집한 울산·경주로 가야 맞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용인을 택한 건 결국 ‘인력’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호남 이전설에 대해 “국가 미래를 땅에다 묻는 매국노 짓”이라고 힐난했다.

논란이 증폭되자 청와대도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8일 브리핑을 통해 “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화성-평택-기흥-용인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벗어나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인력 수급도 매우 어려워진다”며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공장도 지역적 요인으로 이직률이 높은데, 호남으로 이전할 경우 인력 수급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제작의 효율성과 기업의 선택이 우선돼야 할 사안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