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명절 인사가 불편해진 이유[생생확대경]

정치

이데일리,

2026년 2월 14일, 오전 06:41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설 연휴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현수막 전쟁이 다시 시작했다. 누구보다 잘 보이는 곳에 현수막을 걸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탓에 사실 처음 들어보는 지역 정치인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도 즐비하다. 종교시설을 찾는 정치인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전통시장과 경로당, 아파트 단지 입구마다 인사 현수막이 내걸리며 명절 분위기 속에서 표심을 향한 물밑 경쟁도 함께 달아오르고 있다.

지방선거 공천헌금 의혹이 불거진 강선우(왼쪽) 무소속 의원과 김병기 무소속 의원. (사진= 방인권 노진환 기자)
평소라면 정치인들도 나름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올해 설 명절엔 유독 그들의 행보가 달갑지만은 않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를 받고 있는 배경엔 지역구 정치의 어두운 이면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강선우 의원은 지난 2022년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의원 공천을 원했던 김경 전 서울시의원에게 1억원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전 시의원은 이후 당선에 성공했다. 한 번 성공한 방법이어서였을까. 김 전 시의원은 또 다시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 출마를 위해 여당 정치인들에게 차명으로 쪼개기 후원을 했다.

이재명 정권의 핵심 실세 중 하나였던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수천만원의 차명 쪼개기 후원을 한 김 의원 지역구 내 정치인들도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았다. 심지어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를 김 의원의 아내가 썼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공천과 후원이 얽히고 설킨 구조가 지역 정치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집권당만의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 전 대표를 지냈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들은 자신들이 당 대표직을 맡았을 때도 수많은 공천 청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역의원은 1억원, 기초의원은 5000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도 했다.

전국 250여개 지역구에서 공천 관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야 500여명의 정치인들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광역의원 등 공천을 받고 싶어하는 수천명의 지역 정치인들이 이들에게 여러 경로로 금품을 건네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선거 하려면 뒷돈 주는 거 아냐?’라는 일반 시민들의 농담같은 말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지역 정치의 허물을 알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니 좋아 보일 리 만무하다. ‘저 사람도 돈 준거 아닌가? 저 사람은 돈을 받았으려나?’ 하는 생각부터 앞선다. 돈을 내고 당선이 됐으니 가족기업의 일감을 따낸 김 전 시의원의 사례처럼 주민보다는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국가데이터처에서 주기적으로 조사하는 국가기관 신뢰도에서 정치권을 대표하는 국회는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사 대상 중 꼴찌다. 지금 들려오는 지방선거 공천헌금 관련 소식은 이 같은 고질적 불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정치 불신이 구조화되면 제도 개선 논의조차 힘을 잃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선봉에는 수사의 핵심 기관이 된 경찰이 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일벌백계’를 통해 더는 정치권에서 금품이 판을 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공천을 둘러싼 금전 거래를 종식할 수 있도록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할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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