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통합에 찬성하느냐가 아니라 통합 이후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키울 것이냐다. 통합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정통합 이후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은 조직이다. 지방자치의 목적은 조직과 운영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따라서 통합은 규모 확대가 아니라 기능 재배치여야 한다. 본청은 전략 기능 중심으로 슬림화하고 재정·산업·교통·환경과 같은 광역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반대로 복지, 돌봄, 안전, 생활민원은 생활권 단위로 내려보내 주민 가까이에서 작동해야 한다. 행정은 멀리서 설계하고 가까이에서 집행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의회 역시 변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본질은 행사 참석이 아니라 예산 심의와 행정 감시다. 통합 이후에도 의원들이 지역 예산을 나눠 가져오는 데 몰두한다면 통합의 효과는 사라진다. 이제 지방의회는 ‘우리 지역 몫’을 따지는 곳이 아니라 ‘전체 행정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뀌었는가’를 검증하는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복 기관을 줄였는지, 공공시설 배치가 합리적인지, 서비스 수준이 개선됐는지를 따지는 것이 의회의 역할이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생활 자치와 광역 전략의 분리다. 산업과 교통, 의료와 교육은 이미 광역 단위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주민이 체감하는 행정은 여전히 생활 단위다. 따라서 광역은 성장 전략을 담당하고 생활권은 삶의 질을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좋은 정치인은 이 둘을 연결하는 사람이지 한쪽만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첫째는 행정 구조를 재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는 생활 자치에 대한 감각이다. 셋째는 재정을 이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이다. 넷째는 치안과 안전을 생활행정으로 연결해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반대로 통합을 감정 정치로 소비하거나 청사와 간판에 집착하거나 예산 나눠주기에 익숙한 후보는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통합의 효과를 없애고 비용만 키우는 존재다.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남는다. 예산이다. 통합의 성패는 결국 돈에서 결정된다. 조직을 줄이지 못하면 예산은 줄지 않고 예산이 줄지 않으면 서비스의 질도 올라가지 않는다.
통합 이후에는 무엇보다 중복 예산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청사 유지비, 유사 기능 기관, 행사성 예산, 중복 투자 사업을 줄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통합의 효과는 ‘얼마를 더 썼는가’가 아니라 ‘얼마를 줄였는가’로 증명해야 한다.
절감한 재정은 다시 주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교통, 돌봄, 보건, 안전, 디지털 행정 등 생활의 질을 높이는 분야에 집중투자해야 한다. 동시에 예산은 투입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민원 처리 시간, 복지 전달 속도, 안전 지표와 같은 구체적 변화가 없다면 그 예산은 실패한 예산이다.
공공기관과 인력구조 역시 재편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조직은 줄이고 필요한 현장에 인력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 숫자를 유지하는 행정이 아니라 기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산은 지역경제와 연결해야 한다. 단순한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을 만드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산업 유치, 기업 지원, 상권 활성화와 연결되지 않는 예산은 결국 사라지는 돈일 뿐이다. 통합 지방정부는 행정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 단위로 작동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여야 한다. 재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통합이 이뤄질수록 예산 규모는 커지고 의사결정은 더 멀어지기 쉽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강력한 공개와 평가 시스템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 사업별 성과를 주민에게 명확히 공개하고 실패한 사업은 과감히 중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 참여 예산제 역시 형식적 절차를 넘어 실질적 의사결정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기반 재정관리도 필수적이다. 데이터 기반으로 사업 효과를 분석하고 중복 사업을 자동으로 식별하며 정책 효과를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통합의 규모는 오히려 비효율을 키울 수 있다. 이제 재정은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운영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모든 지역에 똑같이 나누는 예산은 정치적으로는 편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가장 비효율적이다. 통합 지방정부는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히 줄이며 미래를 위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합의 모습은 고품질 서비스, 저비용 행정, 효율적인 조직 그리고 주민 소득의 실질적 증가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 통합은 성공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사람을 뽑는 선거이면서 동시에 행정체제를 설계하는 선거다.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당이 아니라 설계도다. 그 후보가 무엇을 줄이고 살릴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말할 수 있는가다.
통합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개혁은 조직이 아니라 예산에서 완성된다. 그것은 더 많이 나눠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생활의 질이 좋아진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가장 경계할 대상은 정치적 편 가르기를 하는 자들이다. 지방행정은 정치가 아니라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