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 장제원 발인...尹 탄핵의 날, 보수의 몰락 [그해 오늘]

정치

이데일리,

2026년 4월 04일, 오전 01:21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2025년 4월 4일 오전 9시 원조 ‘윤핵관’ 故 장제원 의원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진 날과 같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장제원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전현직 국회의원 중 가장 먼저 장 전 의원 빈소를 찾은 건 유승민 전 의원이었다. 유 전 의원은 “제가 정치를 하면서 한세월 함께 했던 후배고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에 작별 인사드리러 왔다”며 조의를 표했다. 장 전 의원의 정치적 동지이자 지역구를 물려받은 김대식 의원도 계속 곁을 지켰다.

2008년 한나라당, 2016년 무소속, 2020년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해 부산 사상구에서 18, 20, 21대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장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을 맡는 등 ‘친윤계’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윤 전 대통령 대선 승리 이후 당선자 비서실장을 맡으며 원조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됐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당 안팎에서 쇄신 압박이 높아지자 장 전 의원은 선당후사 정신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2선으로 물러났다.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2025년 3월 ‘비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다. 부산 한 대학교 부총장이던 2015년 11월 당시 비서였던 A씨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A씨는 2015년 11월 17일 장 전 의원이 2016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선거 포스터를 촬영한 후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그는 호텔 와인바에서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일어나서야 주변 상황 등을 종합해 성폭행과 추행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반면 장 전 의원 측은 A씨가 주장하는 성폭행은 없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고소 사실이 알려진 후 “엄중한 시국에 불미스러운 문제로 당에 부담을 줄 수가 없어 당을 잠시 떠나겠다”며 국민의힘에서 탈당했다. 그는 “누명을 벗고 돌아오겠다”며 성폭행 의혹은 계속해서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술은 마셨지만 여러 명이 동석했고 2차 술자리가 끝난 뒤 집에 돌아가 문제 될 부분이 없었다는 게 장 전 의원 측 주장이었다.

장 전 의원 변호를 맡은 최원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성폭력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수사 기관에 제시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언론을 통한 양 측 공방이 이어지던 중 3월 31일 A씨 측에서 사건 당시 서울 강남구 한 호텔 안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공개하며 추가 급격히 기울었다.

영상에는 ▲장 전 의원이 A씨 이름을 부르며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모습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장면 ▲피해자가 울먹이며 응대하는 음성 등이 담겼다. 장 전 의원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거들이 공개된 것이다.

A씨 측은 또 피해자 특정 신체 부위와 속옷 등에서 남성 유전자형이 검출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와 장 전 의원이 사건 직후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고도 설명했다.

4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5.04.04. (사진=뉴시스)
같은 날 밤 오후 11시 40분, 장 전 의원은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 타살 혐의점은 없고 가족을 향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 내용이 담긴 자필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영상을 공개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어 고소 경위 등을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장 전 의원 사망 사실이 알려지며 취소했다.

2025년 6월 서울경찰청은 해당 사건을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다.

앞서 여성단체와 A씨 측은 “이미 수사는 80% 진행됐다”며 ‘회복적 사법’ 관점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형사소송법(328조)은 피의자가 사망하면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전 의원 죽음을 두고 많은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같은 당 소속이던 하태경 전 의원은 “그는 이미 죽음으로 업보를 감당했기에 누군가 정치인 장제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추모를 해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라며 “재능 있고 의리 있으며 몇 번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결단력 있는 정치인”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김성태 전 의원도 라디오에서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며 “고인이 살았으면 보수 정치권에서 큰 역할을 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또한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이) 어저께 두 번씩이나 (제게) 전화하셔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며 “빈소에 대신 가서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좀 전해드렸으면 한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구속 상태로 빈소에 직접 갈 수 없었다.

반면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대중과 친숙한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6년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졌을 때 썼던 글을 다시 공유했다. “자살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포장되고 모든 것의 면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지난 2020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당시 “거대 권력을 고소하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피고인이 생을 마감했을 때 그녀가 느낄 충격이 얼마나 클지 그 마음도 헤아려봐 달라”고 말했다.

나 교수가 글을 재공유한 이유는 가해자 사망으로 인한 사건 종결이 피해자에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故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과거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 전 의원 사망은 ‘피의자 사망 시 공소권 없음으로 인한 사건 종결’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다.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앞서 배우 조민기,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미투(MeToo)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었던 피의자들이 사망하면서 성추행 의혹도 종결된 바 있다.

A씨에 따르면 그가 받은 불송치 결정 통지서에는 사건 당일 현장에서 피해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동영상에 대해선 ‘당일 촬영한 것이 맞다’고 기재됐다고 한다. 다만 사건 직후 A씨가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채취한 뒤 국과수에서 감정한 남성 DNA와 관련해선 ‘피의자 조사를 하며 구강세포 채취를 요청했지만, 그 이후 피의자가 사망했다’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DNA를 통해 장 전 의원의 동일인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의자가 사망한 다른 사건들에서도 경찰은 수사 결과를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며 “장 전 의원 사건도 마찬가지로 실체를 밝히는 것이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허공에 맴돌았다.

A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가해자는, 10년 뒤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지 못한 채 DNA 채취 거부와 동시에 스스로의 삶을 끊어냈다. 너무 화가 난다”며 “그의 잘못으로 10년을 고통 속에 살았는데 단 한 번의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죽음으로 증거를 인멸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을 향해서도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죽음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났다”며 “제가 제출한 증거들은 종잇조각이 되어버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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