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철로 팔린 해군의 역사

정치

이데일리,

2026년 4월 08일, 오후 05:56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최근 제1연평해전 승전의 주역이었던 참수리 고속정이 퇴역 이후 고철로 매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처음에는 감정적인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확인된 사실과 구조의 문제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드러난 내용은 이 사건이 ‘우연한 결과’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판단’이었음을 보여준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참수리 325호의 경하톤수는 약 130톤이었고, 매각된 폐선의 중량은 약 93.6톤이었다. 약 36톤이 줄어든 상태에서 처분된 것이다. 이는 단순 폐기가 아니라 일정한 해체 및 정비 과정을 거쳐 매각이 진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매각 방식 역시 명확하다. 감정평가를 통해 예정가격을 정하고,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kg당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받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이 배는 전투의 상징이 아니라 ‘중량 단위의 자원’으로 평가됐다.

의사결정 구조 또한 분명하다. 퇴역 함정의 매각 여부는 국방부 장관이 승인하고, 실제 계약은 해군 군수사령부가 체결한다. 즉, 이 사건은 실수나 일탈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판단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다. 문제는 절차가 아니라 그 절차를 움직이는 기준이다.

많은 사람들은 “절차대로 했다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절차가 정상이라는 것은 같은 기준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잘못되어 있다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참수리 고속정은 단순한 장비가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켜낸 승전의 현장이며, 장병들의 생존과 죽음이 교차했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기준은 단 하나였다. kg당 얼마인가. 이 순간 국가의 관점이 드러난다. 역사는 비용으로 환산되고, 기억은 자원으로 환산되며, 영웅은 장비로 환산된다. 이 구조에서는 어떤 전투도 결국 고철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일관성이다. 같은 연평해전임에도 제2연평해전의 참수리 357호는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다. 반면 제1연평해전의 승전 주역은 사라졌다. 이 차이를 단순한 사건의 크기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국가는 기억을 설계해야 하는 존재인데, 지금은 기억이 아니라 행정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비교는 시사점을 준다. 미국 군의 작전 원칙을 보면 때로는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원을 투입한다.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전력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오버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기준은 분명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 중부사령부를 지낸 프랭크 매켄지 전 사령관은 C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공기를 만드는 데는 1년이면 충분하지만,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전통을 만드는 데는 20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군 조직을 지탱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비는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신뢰는 축적해야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국 ‘국가가 나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군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존중이다. 자신이 이 나라에 의해 기억된다는 확신은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결속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결속은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과 협력, 임무 수행의 안정성을 높여 결국 전투력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반대로, 기억되지 않는 군인은 자신을 소모품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순간 조직은 유지될 수 있지만, 헌신은 약해진다.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대와 신뢰로 움직이는 군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고속정 한 척이 아니다. 국가가 군인을 대하는 기준, 그리고 어디까지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지금의 선택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경제적 가치가 끝나면 기억도 끝난다는 것이다.

국가는 무기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강해진다. 우리는 지금 승리를 남기고 있는가, 아니면 승리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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