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번엔 진짜 모릅니더” 흔들리는 대구…그래도 “막판엔 또 찍을끼다”

정치

이데일리,

2026년 4월 19일, 오후 03:16

[대구=이데일리 송재민 기자] “이번엔 진짜 모릅니더.”

지난 16일 찾은 대구 서문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가장 많이 들린 말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시장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좌판마다 손님이 이어졌고, 상인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대구시장 선거 이야기가 오갔다. 다만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던 이곳에서도 “이번 선거는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한쪽으로 쏠리던 표심은 눈에 띄게 흩어져 있었다.

지난 14일 찾은 대구 서문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송재민 기자)
◇“장사도 안 되는데 정치도…” 서문시장 민심 ‘균열’

“선거가 웃기게 돌아간다 아이가. 김부겸도 가능성은 있지예. 근데 아직 마음은 못 정했어예. 젊은 사람들 위주로 민주당 뽑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이기 분산이 안 돼야 하는디 완전히 위기라예.”(70대 남성·택시기사)

서문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80대·여)는 “뽑아놔도 다 지들 잘될라 카는 거 아니냐”며 “한 가족 안에서도 아들 생각, 며느리 생각 다 다를 텐데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라고 혀를 찼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린 분위기였다.

국민의힘 내부 상황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는 유례없이 후보들이 난립했다. 당은 지난달 경선 후보를 6명으로 압축했지만, 최종 후보를 가리기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소요되면서 공천 과정이 길어졌다. 아직 ‘최종 후보’가 아닌 탓에 선거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시장 내 한 분식점에서는 손님과 주인 사이에 언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 60대 남성 손님이 “여론조사랑 실제 투표는 다르다. 막상 투표장 가면 손이 안 간다”고 소리를 높이자, 50대 여성 점주 B씨는 “대구 경제가 너무 안 좋아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있다. 여기 경제지표가 전국 꼴찌라는데 뭐라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맞받았다.

이 점주는 “김부겸 쪽에서 공약도 많이 들고 나오고 해서 마음이 살랑살랑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남성 손님은 “선거철만 되면 나랏돈 뿌린다고 하는데 그게 문제”라면서도 “그래도 받을 건 받아도 사람은 제대로 찍어야 한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치에 대한 피로감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식당에 있던 50대 남성 박모 씨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뉴스도 안 보고 투표도 안 할란다”며 “정치라면 학을 뗀다”고 했다.

◇동성로의 2030 “대구도 살아남아야…색깔 맞춰야지예”

서문시장에서 약 1km 떨어진 동성로의 분위기는 한층 더 도전적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2030 세대에게 ‘보수 텃밭’이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다.

회사원이라고 밝힌 서모씨(30대·여)는 “국민의힘이 내부에서 계속 싸우고 정리가 안 되니까 김부겸 쪽으로 눈 돌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며 “예전처럼 (국민의힘의)압승은 아닐 것 같고 생각보다 격차가 많이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성로 거리에서 마주친 한 20대 남성은 취재진을 향해 “대구도 이제 꼴통 보수에서 벗어나 보자. 대통령이 이재명인데 (시장도) 색깔을 맞춰야 대구도 살아남지 않겠느냐”며 “대구 좀 살려달라. 어대겸(어차피 대구시장은 김부겸)!”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념’보다 ‘생존’과 ‘실리’를 위해 야당 시장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추경호 “민주당 바람보다 우리 쪽에서 밀어내는 바람이 더 세”

현장에서 만난 추경호 예비후보는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보수 정당에 대한 실망감의 원인을 ‘내부 갈등’에서 찾았다. 추 후보는 “우리 당이 그동안 내부에서 너무 싸우고 갈등을 보여줬다”고 짚었다. 이어 “공천 과정의 난맥상에 시민들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대구 수성구 대구MBC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비전토론회'에 참석한 추경호·유영하 예비후보. (사진=연합뉴스)
특히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약진에 대해 그는 “지금은 민주당 바람보다 우리 쪽에서 밀어내는 바람이 더 셌던 것”이라며 “가던 유권자들이 ‘이 길은 아니지’ 하고 다시 돌아설 수 있도록 마음을 붙잡는 게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옛날보다 민심이 달라진 건 맞지만, 아직도 ‘미워도 다시 한 번’ 하는 기류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7일 대구시장 본경선 후보를 2인으로 압축했다. 추경호·유영하 예비후보가 결선에서 맞붙는다. 유영하 예비후보는 결선 진출 직후 “무너진 대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시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인다”며 “삼성 반도체와 의료 인프라 유치를 통해 대구 경제의 판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두 후보는 19일 토론회를 거친다. 이어 24~25일 책임당원 투표와 일반 시민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최종 후보는 26일 선출된다.

지난 3월 대구시장 공천 컷오프 입장 밝히는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변수는 남아 있다.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다. 주 의원은 가처분 기각 결정에 불복해 항고 방침을 밝혔다. 이 전 위원장 역시 경선 복원을 촉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들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보수 표심 분열은 불가피하다.

대구의 한 택시기사(60·남)는 “결국 막판엔 또 찍어주겠지만 이번엔 진짜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보수의 성지로 불리던 대구 민심은 지금, 분열과 결집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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