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금과 같은 국제 비확산 환경에서는 핵연료 확보 문제를 단순히 한미 양자 협력의 틀 안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IAEA와의 제도적 합의를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이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용 연료 수급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 의지를 표명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이 약속이 실제 제도적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 내부 검토는 물론 미 의회의 승인과 정치적 설득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핵연료 정책은 행정부 단독으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라 의회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영역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전략사업의 시간표를 미국 의회의 정치 일정에 종속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이와 달리 IAEA와의 협의는 한국이 스스로 국제적 신뢰를 구축하는 능동적 외교 전략이 될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용 연료를 저농축우라늄(LEU)으로 제한하고 이를 오직 군함 추진체계에만 사용하며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제도적 약속을 선제적으로 제시한다면 국제사회는 한국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특히 핵연료 사용과 저장 등 전 과정에 대해 투명한 사찰을 수용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비확산 체제 내에서 관리 가능한 군사적 활용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IAEA의 사찰 체계는 형식적으로는 국제기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비확산 정책 방향과 긴밀히 연동되어 운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핵연료 이전, 농축 수준, 사찰 강도와 범위 등 주요 기준은 미국의 전략적 판단과 조화를 이루며 결정되어 왔다.
실제로 미국은 필요에 따라 예외적 조치를 인정해 온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공유 체제에서는 비핵보유국이 미국 전술핵 운용에 참여하고 있으며, 인도에 대해서도 2008년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의 예외 인정이 이루어진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영국·호주의 AUKUS 체계 내 협력을 통해 비핵보유국인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제 비확산 체제가 절대적 금지 구조라기보다 전략적 필요에 따라 관리 가능한 예외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이 먼저 IAEA와 협의를 통해 제도적 틀을 정립하는 것은 미국 의회 설득 과정에서도 강력한 논리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첫째, 저농축우라늄 사용과 전주기 사찰 수용이라는 원칙을 국제기구 차원의 검증 가능한 틀 속에서 먼저 확정할 경우 사업의 비확산 정당성이 선제적으로 확보된다. 둘째, 국제 규범에 부합하는 사업 구조가 확정되면 미국 행정부가 의회를 설득하는 정치적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셋째, 한국이 먼저 투명성 모델을 제시할 경우 향후 핵연료 공급 방식과 정비·운용 개념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핵추진 잠수함 사업이 단순한 무기체계 획득 사업이 아니라 국제 신뢰 체계 속에서 추진되어야 하는 국가 전략사업이라는 사실이다. 핵연료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외교의 문제이며 동시에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책 결정을 기다리는 수동적 접근보다 IAEA와의 협의를 통해 국제적 정당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능동적 접근이 훨씬 전략적이다.
지금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핵추진 잠수함 연료 확보 문제를 한미 양자 협력의 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제 비확산 체제의 중심 기구인 IAEA와의 협의를 통해 제도적 기반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사업의 추진 속도를 높이고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며 동시에 미국 의회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적 해법이다.
문근식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