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 담론들(저출생, 연금 개혁, 기후 위기, 그리고 지역 소멸)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세대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짓지만 정작 그 결정 과정에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완벽히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현재 투표권을 가진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몰두하고 있지만 이는 냉정하게 말해 미래세대의 자원과 권리를 가로채는 현재의 전횡과 다름없다.
우리는 누구의 어떤 미래를 논하고 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문법에 주목해야 한다. 미래 디자인은 단순히 세련된 제품이나 도시의 미관을 꾸미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미래 사회를 위해 어떤 서사(Narrative)를 구축하고, 그 상상력을 어떻게 사회적 선택의 기준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해 3월 31일 열린 연금개혁에 대한 청년·학생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소득대체율 인상 등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안은나 기자
결핍된 미래 상상력과 AI 시대 서사의 힘
그동안 우리의 미래학은 주로 기술적 예측이나 통계적 전망에 의존해 왔다. 인공지능(AI)이 몇 퍼센트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지, 인구 감소 그래프가 언제 꺾일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갈 인간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는 빈약하다.
미래 서사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금 공유하는 내일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오늘 내리는 결정이 50년 후, 100년 후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각화다. 미래 사회는 우리의 현재와 전혀 다른 사회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미래 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사이토 다쓰요시 등 일본의 학자들은 '가상 미래인'(Imaginary Future Generations)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현재의 정책 결정 테이블에 60년 뒤 미래에서 온 시민의 대표를 앉혀보는 시도다. 놀랍게도 미래인의 관점을 취하는 순간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극적으로 변한다. 현재 세대의 이익을 위해 산을 깎고 빚을 늘리던 이들이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서사가 가진 힘이며,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미래의 핵심이다.
기술과 상상력의 결합 그리고 문화적 실천
우리는 흔히 기술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지만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부릴지는 우리의 상상력과 문화적 토대에 달려 있다. 청년과 시민이 참여하는 미래 상상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상상하고 서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실험을 요구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창의 산업과 문화 기술(CT)은 주로 소비적 재미와 상업적 성과에 매몰돼 있다. 진정한 의미의 미래 디자인은 이러한 기술력을 공공 미래상을 형성하는 데 투입하는 것이다. 증강현실(AR)을 통해 30년 후 폐허가 된 도시를 체험하게 하거나, 메타버스를 통해 세대 간의 갈등을 시뮬레이션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실천이자 디자인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예술과 디자인 기반의 미래 시나리오는 정교한 데이터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 편의 시나리오가, 한 점의 디자인이 시민들에게 "우리가 정말 이런 미래를 원하느냐"고 물을 때, 비로소 사회적 선택의 전환점이 마련된다.
미래 디자인,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히는 일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30일 앞으로 다가온 4일 대구 서구 중리동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홍보관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지역 초중등 학생들의 투표 참여 캠페인 포스터 응모 작품을 정리하고 있다. © 뉴스1 공정식 기자
과연 우리는 미래세대에 당당한 선배 세대인가. 제9회 지방선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많은 공약과 담론이 정략적 표 계산과 경제 논리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그만큼 오늘의 변화가 미래 세대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미래 디자인은 민주주의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리그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권익까지 고려하는 확장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입안 과정에 '미래 서사 영향 평가'를 도입하거나, 지자체마다 미래 디자인 협의체를 구성해 장기적 관점의 공공 미래상을 수립하는 실질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
강원도와 같은 지역 사회의 소멸 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보조금을 쏟아붓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 스스로 20년 후의 삶을 디자인하고, 그 서사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연결되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될 때 비로소 지역은 살아난다.
미래를 기억하는 사회로
미래는 예측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디자인하는 자의 것이다. 인간 중심의 미래 사회는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서사 위에서 세워진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기억하는'(Remembering the Future) 역설적인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2026년의 우리를 돌아보며 "그때 그들이 우리를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해주었노라"고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서사를 오늘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한 책임이자 미래 디자인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다.
사회적 선택의 기준을 현재의 이익에서 미래의 가치로 옮기는 것, 그 거대한 문화적 전환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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