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5·18 앞두고, 다시 '광주'를 말한다

정치

뉴스1,

2026년 5월 17일, 오전 06:00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둔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오월의 꽃이 피었습니다'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5·18기념재단이 주관하고 공법 3단체(유족회·공로자회·부상자회), 광주전남김대중재단, 함께하는 시민들이 참여한다. 광주·전남 지역 학생 518명이 민주묘지에 카네이션을 헌화했다. 2025.5.16 © 뉴스1 이수민 기자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설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시민군들의 증언을 이렇게 전한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왜 남았느냐는 물음에 살아남은 이들의 답이었다. 한강은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212~213쪽)고 썼다.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를 과거의 사건으로 닫아두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온 날 밤 도청에 남았다가 총에 맞아 죽은 소년 동호를 '그'가 아니라 '너'로 부르며, 희미해져 가는 광주를 오늘의 독자 앞에 다시 불러낸다. 5·18은 국가폭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현재형 질문으로 남아 있다.

18일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이다. 정치권은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광주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이 광주가 남긴 고통과 인간 존엄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달 개헌 논의의 출발점은 가볍지 않았다. 계엄 요건을 강화하고,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자는 취지였다. 여야가 큰 틀에서 공감해온 사안이기도 했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민주당이 개헌 논의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자 국민의힘은 "선거용 졸속 개헌"이라고 맞섰다. 헌법적 가치로 무겁게 다뤄져야 할 개헌론은 지방선거와 맞물리며 여야 공방 속에 힘을 잃었다.

최대 격전지 서울에서는 5·18이 더 거친 공방의 언어로 불려 나왔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과거 폭행 전과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발단을 5·18 관련 언쟁으로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사건의 본질은 5·18 논쟁이 아니라 주취 폭행"이라고 맞섰고, 민주당은 확정 판결문을 근거로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하며 고발로 맞불을 놓았다.

이후 논란은 술자리의 구체적 정황과 자극적 의혹까지 더해지며 5·18의 역사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번졌다. 진실 공방의 향방은 법적·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남더라도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5·18이 역사적 성찰의 언어가 아니라 해명과 공격의 소재로 불려 나왔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의 호남 행보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당 지도부는 지난 16일 국민의힘의 험지인 전북 일정을 소화한 뒤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도 참석한다. 보수 정당 대표가 광주를 찾고 호남을 향한 메시지를 내는 일 자체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일부 호남 지역 무공천과 한 자릿수에 머무는 호남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여전히 호남에서 정치적 기반과 신뢰를 충분히 쌓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5·18이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의 항쟁이었다면, 광주 앞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하는 보수정당의 언어는 더 무겁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국민의힘의 호남 행보가 진정성을 얻으려면,비상계엄 사태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 과오와 단절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5월 광주를 말하는 정당일수록 권력의 사용을 더 조심스럽게 돌아봐야 한다. 5·18은 국가폭력에 맞서 시민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항쟁이었다. 그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뜻을 관철하는 원리가 아니었다.국가권력이 시민의 존엄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고, 어떤 권력도 절차와 인권을 넘어설 수 없다는 요구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정치도 5·18의 이름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국회 안에서는 거대 의석을 앞세운 속도전과 일방 처리가 익숙한 장면이 됐다. 조작기소(공소취소) 특검법과 사법제도 개편, 개헌 논의처럼 권력기관과 헌정질서의 근간을 건드리는 사안들까지 충분한 숙의보다 속도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제도는 숙의의 장이 아니라 진영 대결의 무대가 됐다.

한쪽은 현재의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고, 다른 쪽은 과거의 책임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광주를 말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국민의힘은 광주를 찾으면서도 계엄의 강 앞에서 머뭇거린다. 공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시민들이 끝내 지키려 했던 것은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였다.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정치라면, 광주를 선거의 창과 방패로 소비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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