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비행기 회사의 말단 견습생으로 항공기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전쟁이 터지자 공군 하사로 차출돼 정비사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조종사들이 다시 하늘로 오를 수 있도록 비행기를 정비했고 1·4후퇴 때는 가족을 흑석동에 남겨둔 채 대구까지 후퇴해야 했다. 세 살배기 아버지를 안은 할머니는 국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란길마저 마음 놓고 걷지 못했다.
전쟁은 군인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조종사는 하늘에서 싸웠고 정비사는 땅에서 하늘을 떠받쳤으며 가족들은 삶의 자리에서 나라의 운명을 함께 견뎌냈다. 할아버지는 전쟁 이후에도 공군에 남아 대위로 전역했다.
세월이 흘러 손자인 필자는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전투조종사가 됐다. 조종복을 입고 처음으로 할아버지 앞에 섰을 때 할아버지는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전쟁 속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낸 하늘을 손자가 날게 됐다는, 말보다 깊은 자부심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필자는 KF-16 조종사로 살아왔다. 전투기 조종석은 멋진 자리이기 전에 무거운 자리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무게가 늘 함께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는 기적과도 같다. 1950년 우리는 변변한 전투기조차 없이 전쟁을 맞았다. 그러나 7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스스로 KF-21을 만들어낸 나라가 됐다. 이제 스텔스 전투기를 넘어 인공지능(AI) 기반 무인자율전투기, 즉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CCA는 조종사가 탄 전투기와 함께 싸우는 AI 윙맨이다. 미래 공중전에서 인간 조종사는 더 이상 혼자 싸우지 않는다. KF-21이 하늘의 지휘 플랫폼이 되고 AI 무인전투기가 정찰·전자전·기만·공격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할아버지 세대가 지켜낸 것은 비행기 몇 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지킨 것은 대한민국의 하늘이었고 우리가 살아갈 미래였다. 오늘 우리가 준비하는 CCA도 미래 공군의 어떤 전력도 결국 그 정신 위에 서야 한다.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다시 생각한다. 1950년의 대한민국은 전투기조차 부족한 나라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스스로 전투기를 만들고 AI 윙맨의 시대를 준비하는 나라가 됐다.
“네가 타는 비행기는 국민이 주신 거다.”
최일선 조종사였던 때에도, 전력발전을 고민하는 지금에도, 할아버지의 이 말씀은 내 심장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국민이 주신 전투기로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는 것. 할아버지 세대가 목숨으로 지킨 이 나라를 더 강한 공군으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6·25를 기억하는 군인의 자세이며 대한민국 공군이 미래로 날아가야 할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