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오찬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7.1 © 뉴스1 허경 기자
부산 수영구와 연제구 경계에 자그마한 김밥집이 하나 있었다. 자매 사이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우동 국물은 특별할 게 없는 멸치 우린 물이었고, 김밥도 단무지와 오이, 햄이 전부인 소박한 구성이었다.그런데도 맛이 심심하기는커녕 입에 착 감겼다. 그런 평범한 재료들로 어찌 그런 따스한 풍미를 냈을까.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그곳을 자주 찾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음식도 그 김밥이었다. 저녁 무렵 허기가 밀려올 때면 그 김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몇해 전 부산에 내려가 그곳을 찾아갔다. 간판도 메뉴도 그대로였는데 문을 여니 처음 보는 얼굴의 아주머니가 김밥을 말고 있었다. 김밥 한 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고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마음에 말을 건넸다.
"사장님, 여기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엄마랑 언니랑 자주 왔어요. 제 어린 시절 추억 같은 곳이에요."
돌아온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아 그래요" 한 마디만 남기고 아주머니는 다시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새 주인은 잘못이 없었다. 아마도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이어받았을 그분에게 낯선 손님의 오래된 추억까지 품어줄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
김밥 맛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얹힌 공기가 무거웠던 탓인지 입안을 감도는 맛이 써서 목구멍으로 삼키기가 어려웠다. 밀려오는 무안함에 김밥 몇 개를 욱여넣고선 서둘러 값을 치르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날의 퇴장이 남긴 후유증은 길고 깊었다. 두 달이 넘도록 그곳에서 돌아서던 순간이 마음 한구석을 떠나질 않았다. 유년시절이 한마디로 부정당한 듯한 비참함 그리고 고작 타인의 무심한 반응 하나에 이토록 오래 흔들리는 내가 다듬어지지 않은, 부족한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뒤엉켰다.
사실 새 주인은 내 어린 시절을 부정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내 귀에는 "아 그래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내 유년의 기억을 밀어내는듯한 말처럼 박혀버렸다.
요즘 민주당을 달구는 '문조털래유' 논란과 지지층 내부의 깊어진 균열을 바라보며 문득 그 김밥집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지금의 갈등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쉽게 봉합되지 않는 감정의 충돌에 가깝다.
새로운 주류인 '뉴이재명'에게 민주당은 더 이상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집권여당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랜 기억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국정과 선거를 책임지는 것이다.
반면 노무현과 문재인의 시대를 지나온 오랜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은 그저 지지하는 정당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시간과 기억, 실패, 승리가 축적된 곳이다. 간판도 그대로고 당명도 그대로인데 자신들이 품어온 서사가 어느 순간 과거의 유산이나 청산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느낄 때 깊은 상실감을 겪을 것이다.
그 감정은 내가 김밥집에서 가졌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내가 기억하던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의 허전함 말이다.
김밥집 주인이 바뀌듯 정당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변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변화는 누군가의 추억을 딛고 지나간다.
새 주인의 현실주의도 틀리지 않았고, 오랜 단골의 서운함도 과한 감정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민주당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역시 그 두 마음이 같은 공간 안에서 충돌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바뀐다는 건 누군가에겐 정서적 비용을 치르는 일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멸칭과 낙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도 부산에 갈 때면 그 김밥집 앞을 찾는다. 여전히 김밥을 팔고 새로운 주인도 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곳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김밥집은 이미 오래전 시간 속에 남겨뒀기 때문이다.
liminallin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