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과장] 본회의 단상에 올라 다수파의 횡포에 맞서 의원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적 지향을 발언시간 제한 없이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 필리버스터의 역할에 대한 이상적인 설명이다. 1964년 4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5시간 19분 동안의 발언은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성공적 필리버스터로 기록되어 있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유신체제에서 국회법 전부개정을 통해 폐지되었다가 2012년에 국회법 개정을 통해 부활하였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과장
(그래픽=김일환 기자)
무제한토론 제도의 도입 목적은 다수결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소수파에게 충분한 의견 개진 기회를 보장하고 원내 타협과 협상을 촉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지 14년이 지나면서 애초의 취지가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22대 국회 들어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법안은 대부분 무제한토론이 실시됐지만 무제한토론 중에 본회의장에 재석한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2025년 정기국회에서 국민의힘이 쟁점 법안뿐 아니라 여야가 합의한 민생 법안에도 무제한토론을 신청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은 본회의 의사정족수 규정을 무제한토론에도 적용하는 국회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국회법을 고치는 것만으로 필리버스터의 도입 목적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수당은 언젠가 자신이 소수당이 됐을 때 필리버스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수당은 향후 다수당이 됐을 때 지금의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당간 상호존중과 협력의 정치문화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무제한토론 제도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