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이 반도체 업황에 따른 세수 변동을 흡수해 국채 발행의 급격한 증감을 막는 완충장치로 활용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금이 많이 걷혔다고 국채 발행을 대폭 줄였다가 세수가 감소한 뒤 다시 대규모로 발행하는 것은 안정적인 국가채무 관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쉽게 말해 반도체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모두 빚을 줄이는 데 사용하지 않고 일부를 ‘별도 미래용 통장’에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이후 반도체 경기가 꺾여 세금이 덜 걷히면 모아둔 돈으로 부족한 재정을 채운다. 세수가 많을 때 국채 발행을 급격히 줄이고 부족할 때 다시 크게 늘리는 방식보다 연도별 발행량을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많이 걷히면 적립, 부족하면 일반회계 보충
미래대응기금은 장기 추세를 웃도는 세수 증가분을 재원으로 한다.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분야에 투자하는 ‘사업계정’과 당장 쓰지 않는 돈을 적립·운용하는 ‘총괄계정’으로 구성된다. 정책사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세수 결손에도 대비하는 구조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래대응기금은 4개분야에 쓰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정 안정화 기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많이 들어올 때는 조금 쌓아놨다가 적게 들어오거나 부족하면 추경이나 국채 발행을 하지 않고 그 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일반회계는 복지·국방·행정 등 정부의 기본 사업을 담는 ‘기본 예산 통장’이다.
정부가 세수를 예상보다 적게 걷었다고 이미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정부 지출이 줄어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부족한 돈을 모두 국채로 조달하면 국채 발행량과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미래대응기금은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힐 때 돈을 적립했다가 결손이 발생하면 일반회계에 보충함으로써 두 상황을 완충하겠다는 장치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세수 전망의 오차가 커지면서 대규모 ‘초과세수’와 ‘세수 펑크’가 번갈아 나타났다. 본예산과 실제 국세수입을 비교하면 2021~2022년 초과세수는 총 110조원을 웃돌았고, 2023~2025년 세수결손은 총 95조7000억원에 달했다. 초과세수는 추경 재원으로 활용됐지만 세수결손이 발생했을 때는 예산을 불용 처리하거나 다른 기금의 재원을 동원해 대응했다. 미래대응기금에 호황기 세수를 적립했다가 세수결손 때 활용함으로써 세수 오차에 따라 재정지출이 급격히 늘거나 줄어드는 것을 막겠다는 게 청와대의 구상이다.
다만 기금에 돈이 쌓였다고 정부가 이를 자유롭게 다른 용도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기금의 돈을 자유롭게 다른 용도로 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편성된 사업 범위를 넘어 지출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면 정식 추경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채 줄어도 금융시장 영향…내년엔 상당폭 덜 발행
정부가 국채 발행을 한꺼번에 줄이지 않으려는 데에는 국채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국고채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빚이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금리의 기준이 되는 지표채권이자 금융회사가 거래하는 주요 상품이기도 하다.
국채 발행량이 갑자기 줄면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국채도 감소한다. 반대로 세수가 부족해 국채를 한꺼번에 많이 발행하면 시장의 공급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세수 상황에 맞춰 발행량을 매년 큰 폭으로 바꾸기보다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조절해야 하는 이유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채는 지표금리나 지표채권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갑자기 줄여버리거나 그 규모가 줄면 금융시장에 있어서도 앵커가 되는 상품이 줄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국채 발행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적정 규모로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신규 국채는 내년에도 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내년 국채 발행량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활용해 내년 국채 발행을 상당 폭 줄일 방침이다. 추가 세수를 전부 기금에 쌓지도, 모두 빚을 줄이는 데 쓰지도 않고 두 용도로 나눠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내년에는 국채를 덜 발행해 실질적인 채무 상환 효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기금 총괄계정에 적립한 돈은 현금으로 묵혀두지 않고 운용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금을 보유하는 데 재정적 타당성이 있으려면 국채를 상환할 경우 아낄 수 있는 이자 이상의 운용수익을 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구체적인 운용 방식과 담당 체계는 기획예산처가 마련하고 있다.
청와대는 아울러 현재로서는 국채시장 안정을 위한 별도 계정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정책사업에 사용할 돈과 총괄계정에서 운용할 돈의 배분 비율도 사전에 정하지 않았다. 기금 취지에 맞는 사업을 먼저 편성하고 나머지를 총괄계정에 넣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계정별 규모는 내년도 예산안에 담길 예정이다.
청와대 전경
청와대는 미래대응기금을 매년 반복되는 복지사업의 재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3~4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한시적·전략적 사업에 투입할 방침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일시적인 수입으로 영구적인 지출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래대응기금은 영속적인 기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초과 세수 부분이 영속적으로 계속 기금에 적립되는 구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 지출 같은 경우에는 한번 설정되면 연속적으로 영구적으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사업은 일반회계에서 지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대응기금은 “3년, 4년의 시계를 가지고 사업을 설정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회계가 매년 계속 지급해야 하는 복지·의무지출을 담당한다면 미래대응기금은 청년과 교육·인재, 지방, 미래 성장동력 가운데 비교적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맡는 구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