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반도체 초과세수를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축소에 우선 투입해 물가·금리·환율의 ‘3고’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반도체 호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진단은 같지만, 나랏빚 감축이냐 일정한 국채 발행과 재정 여력 비축이냐는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류덕현 재정기획보좌관 (사진=연합뉴스)
이어 “국채는 안정적인 국채시장을 위해 일정한 규모가 필요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발행하는 것이 맞다”며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필요한 순국고채 발행 규모는 상당히 줄여 안정화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세수 급증에도 국채 발행을 완전히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는 국채시장의 연속성과 유동성 때문이다. 발행량이 해마다 크게 출렁이면 만기별 국채 수급이 흔들리고 시장의 가격 형성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난 뒤 세수가 급감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호황기에 국채 발행을 지나치게 줄였다가 불황이 닥치면 부족한 세입을 메우기 위해 다시 대규모 발행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호황기에 발행량을 줄이되 시장이 유지될 수준의 물량은 꾸준히 공급하는 편이 재정과 금융시장 모두에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류 보좌관은 “반도체 특수가 일각의 우려처럼 다시 사이클을 그리며 떨어질 수 있다”며 “그렇다면 지금 늘어난 재정 규모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국세 수입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584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가경정예산 기준 101조3000억원보다 115조4000억원 급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가 나라 곳간을 채우는 셈이다.
정부는 세입 증가를 바탕으로 내년도 총지출을 올해보다 93조원 늘어난 820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그렇다고 늘어난 세수를 모두 쓰거나 국채 상환에 투입하지는 않는다.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상당액을 별도로 묶어두기로 했다.
미래대응기금에서는 약 45조원을 성장동력과 청년·지방·교육 분야 등에 투입한다. 나머지 재원은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새로운 재정 수요가 발생할 때 활용한다.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도 일부 투입된다.
류 보좌관은 미래대응기금을 “재정의 저수지”라고 규정했다. 그는 “갑자기 돈이 많이 들어왔다고 모두 쓰지는 않는다”며 “일시적으로 담아뒀다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온다고 지출 규모를 한꺼번에 키우는 것도 경계했다. 호황기에 시작한 사업은 반도체 경기가 꺾인 뒤에도 돈을 투입해야 한다. 일시적인 세입을 토대로 계속사업을 벌였다가는 세수 감소기에 적자 국채 발행만 불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류 보좌관은 “지출을 갑자기 늘리면 어떤 사업이 효과적이고 꼭 필요한지 따져보기 어려워진다”며 “꼭 필요한 사업은 최대한 담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재정 수요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12.8%에 달하지만 이를 전면적인 확장재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래대응기금에 들어간 재원을 한꺼번에 지출하지 않는 데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0.1%에 그치기 때문이다.
류 보좌관은 “미래대응기금 100조원 이상을 모두 쓴다면 확장재정이라는 비판이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실제로는 재정을 상당히 제어하면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조 교수는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과 수출, 기업이익이 반도체 한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올해 반도체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0~30%에 이르고 상장기업 영업이익의 70~80%가 반도체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메모리 가격이 조정되면 경제와 세수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불과 반년 만에 5배 이상 뛴 것은 수요가 구조적으로 안정됐다기보다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빚어낸 측면이 크다고 봤다. AI 투자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반도체 기업의 증설로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빠르게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 충격이나 지정학적 변수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꺾을 수 있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재정정책의 기본은 호황기에 지출을 자제해 불황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물가도 한국은행 목표치인 2%를 넘어선 상황에서 재정을 추가로 확대하면 경기를 더 자극하는 ‘친경기적 재정정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초과세수는 기존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우선 사용해야 한다 게 조 교수의 제언이다. 국채 공급을 줄이면 시중금리를 낮추고 물가와 환율의 상승 압력도 완화할 수 있다. 이른바 ‘3고’를 낮추는 것이 반도체 호황의 혜택을 관련 기업과 주주뿐 아니라 가계와 소상공인 등 국민 전반에 나누는 방법이라는 논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