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7일 소셜미디어 X에 한국어로 작성한 메시지. (사진=X)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적 기여 요청에 대한민국이 기로에 섰다. 미국 정부의 거듭된 압박 속에서 이란 또한 “주권과 책임을 가진 어떠한 국가도 미국의 압력과 협박에 굴복해 침략 행위와 끔찍한 범죄의 공모에 가담해서는 안된다”고 한글 경고문까지 냈다. 국익을 위한 최선책은 무엇일까. 선택지는 파병 찬성 또는 거부다. 어느 쪽이든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지지율 추락 중인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접어들었다.
◇美 호르무즈 파병 압박,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파병 시즌2
해방 이후 국군의 해외파병 사례는 적지 않다. 다만 대규모 전투병 파병은 드물었는데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박정희정권 시절인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32만명을 파병했다. 당시에도 반대는 거셌지만 한국전 미국 참전에 대한 보답, 한미동맹 강화, 미국의 군사경제적 지원 등을 이유로 어럽게 국민적 동의를 구했다. 특히 베트남전 파병으로 벌어들인 소중한 달러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소중한 재원이 됐다.
가장 시끄러운 논란은 참여정부 초반 미국의 이라크전 파병 요청이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당은 파병 찬반을 놓고 극심하게 분열했다. 본회의 표결 결과도 ‘찬성 49 vs 반대 43’으로 팽팽했다. 오히려 한미동맹을 중시한 한나라당의 대거 찬성으로 파병동의안이 겨우 통과됐다. 극심한 국론분열을 경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첫 미국방문 이후 “한신도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고 토로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뇌하던 참여정부는 그해 11월 비전투병 위주의 자이툰부대를 추가 파병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미국은 그야말로 세계 유일의 압도적인 패권국가였다.
최근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는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전 파병 논란과 거의 비슷하다. 미국의 경제통상 압박과 냉엄한 국제질서를 고려할 때 파병은 국익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가 적지 않다. 다만 ‘명분없는 침략전쟁’에 국군 파병은 결사 반대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일대 상황 파악을 위해 현지조사단을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했다. 국방부는 부인했지만 사실상 파병을 앞둔 사전조치로 볼 수 있다.
결단이 필요하지만 청와대는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파병 방침을 정한 채 미국 정부의 파병 요청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다국적 임무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이와 관련, “한국과 프랑스 양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도록 공조를 이어가겠다”고만 언급했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한-프랑스 공동언론발표(사진=연합뉴스)
국군의 해외파병은 대통령의 결정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헌법 60조 2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국회의 파병 동의라는 관문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파병에 대한 대국민 설득 노력은 물론 파병 병력의 임무와 규모, 파견기간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의 교전상황 격화 여부에 따라서는 예기치 못한 추가 변수도 발생할 수 있다.
상황은 복잡하지만 결국 파병 찬반 중 하나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이 대통령의 선택이다. 문제는 지난 4일 정부의 파병 검토 소식에 봇물처럼 터져나온 민주진보진영의 반대 입장이다. 조국혁신당, 진보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 반발도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다. 침묵하는 민주당 의원 대다수는 심정적으로 파병 반대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혁신당은 앞서 미국의 이란 공격 및 최고지도자 사망에 대해 “명백한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5조 1항.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같은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조차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놓고 파병하지는 않았다”고 반대했다. 김종훈 진보당 대표는 “단 한 명이라도 보내는 순간 트럼프의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 반발도 마찬가지다. △송영길 의원 “이라크 전쟁 때보다 더 명분이 없다” △김병주 의원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된다” △이기헌 의원 “어떤 명목으로도 우리 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 등등.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2024년 10월 윤석열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및 파병 가능성에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한반도까지 끌어오려는 것인가”라고 강력 반대한 바 있다. 이제는 야당 대표가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정치인생을 통틀어 가장 길고 어려운 고뇌의 시간에 직면했다. 파병 찬성을 결정하는 순간 집권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6.3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 급락, 8.17 전대 이후 민주당의 극심한 분열상, 8.30 개각 이후 인사참사 논란 등을 고려할 때 파병 찬성은 레임덕 수준으로 지지율을 끌어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파병 거부를 선언할 수도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이 대한민국 경제와 안보에 어떤 리스크를 가져올 지는 예측불허의 상황이다. 게다가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 문제도 딜레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은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논란과 거의 판박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이나 미국의 군사경제적 보복 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협상을 잘해서 비전투병 위주로 파병하는 게 최선의 선택지”이라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내부와 조국혁신당 등 진보 진영의 반발을 최대한 설득해서 국익 최우선 기조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