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나누는 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정청래 의원
반면 사진기자는 정반대다. 매의 눈으로 본회의장을 감시한다. 그야말로 기사의 보물창고이자 특종 사냥터다. 타깃은 주로 본회의장에 출석한 여야 지도부와 유력 정치인들의 휴대폰이다. 때로는 정국을 뒤흔드는 대형 특종사진이 쏟아진다.
◇‘내부총질·전쟁선포’ 본회의장 특종, 우연을 가장한 고의 노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7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체리따봉’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였다. 윤 전 대통령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이준석 전 대표를 저격했다.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을 실시간 생중계하면서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또 ‘전쟁선포’ 문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22년 9월 본회의장에서 당시 의원실 보좌관이었던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문자를 받았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사진기자들의 본회의장 특종 사진은 본회의장의 구조 탓이다. 여야 지도부의 좌석은 본회의장 1층 좌석 가장 뒷줄이다. 망원렌즈로 무장한 사진기자들의 경우 2층 방청석 맨 앞줄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여야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실제 본회의장을 가보면 거리는 너무 가깝다. 휴대폰 문자, 카카오톡, 텔레그램 메시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포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이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유력 정치인들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노출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제는 휴대폰이 아닌 수첩이 논란이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수첩을 살펴보는 장면이 포착됐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서울시장 후보’라는 표현 아래 ‘훈식·원식·청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전대 라이벌이었던 정청래 전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고려한다는 의미였다. 정청래 전 대표는 “불쾌하다”며 “서울시장의 꿈을 꾸다가 낙선한 민석, 영길 등이 좋은 후보이니 수첩에 적어 놓으라”고 반발했다. 김 대표의 ‘정청래 제거 작전’이라거나 정 전 대표의 ‘희생양 불가 선언’이라는 음모론적 해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심각한 문제는 그다음이다. 김민석 대표는 다음날인 10일 민주당TV에 출연, “서울시장 선거와 강릉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99.99% 있다고 본다”며 수첩 내용은 서울시장 보선 준비와 필승카드 마련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김 대표가 서울시장 보선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7월 22일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사건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2심에서 뒤집기가 어려워 3심에서 최종 확정될 것이라는 기대다.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르면 선출직 공직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된다. 특히 공직선거법의 6·3·3 원칙에 따르면, 2심 항소심은 오는 10월, 3심 최종심은 내년 1월이나 늦어도 2월까지 마무리된다.
[서울=뉴시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국회(정기회) 5차 본회의에서 수첩을 보고 있다. 김 대표가 적은 수첩 메모에는 서울시장 후보에 정청래 전 대표를 비롯한 4인의 이름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이름 옆에 'OUT'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사진=데일리안 제공)
그렇다 해도 너무 가벼운 처신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적 도의에도 맞지 않다. 팩트는 오 시장의 사법리스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집권 여당의 압박 때문이라는 불필요한 억측가지 나올 수 있다. 서울시와 국민의힘의 반발은 당연하다. 이종현 서울시 민생소통특보는 입장문에서 “단순한 정치적 발언을 넘어 사법부의 독립을 뒤흔드는 행위”라고 망언으로 규정한 뒤 김 대표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정점식 원내대표 역시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는 것을 기정사실로 해서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년 4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과연 열릴까. 오세훈 시장은 6.3 지방선거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거뒀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선에서 승리한 한동훈 무소속 의원과 더불어 야권의 차기 주자로 급부상했다. 오 시장이 낙마할 경우 여야의 정치지형과 차기 구도가 180도 달라진다. 여야가 오 시장의 낙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서울시장 탈환 기대감에 민주당은 뭔가 분주하다. 국민의힘 역시 수면 아래 정중동이다. 실제 여의도 안팎에서는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군 하마평이 끝없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정반대의 예상도 가능하다. ‘6·3·3 원칙’은 임의가 아닌 강행 규정이지만 위반시 처벌 조항이 없다. 특히 서울시장이라는 유력 차기주자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판결의 경우 사법부도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대법관 후보 재제청을 둘러싼 민주당과 사법부의 관계는 사실상 최악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오 시장의 2심 무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 비용의 대납을 요청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데다 명태균 씨의 진술 신빙성 또한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의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민주당은 2000년대 이후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승리의 기억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민주당 입당’ 이후였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도 2021년 보선 이래 3연속 패배다. 특히 6.3 지방선거의 경우 5월 3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대통령 지지율 64%· 서울 63%’에 달할 정도로 압승 기대감이 넘쳤지만 실제 결과는 ‘오세훈 49.22% vs 정원오 48.07%’였다.
최근 지지율 상황은 더 심각하다. 9월 2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8%, 서울은 29%에 불과하다. 한강벨트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서울 지역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모두 낙선’이라는 두려움에 떨 정도로 부동산 민심의 경우 최악이다. 더구나 ‘김승원·용혜인’ 쌍끌이 버티기에 추가 지지율 하락도 우려된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해도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예상대로 패배한다면 김민석 대표 거취를 둘러싼 책임론 제기는 당연한 수순이다. 모든 지표는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장 보선 99.99%’라는 건 너무 지나친 김칫국 마시기가 아닌가. 모두가 아는 사실을 왜 민주당만 모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