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출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공)
그는 “대학시절 얘기지만 5·18 때는 (신군부가) 밤 12시에 국무회의 하고 계엄을 선포했다”며 “당시 대국민담화도 없었고, 장관이 광화문 중앙청 기자실 칠판에 계엄 선포 관련 내용을 공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나는 국민들이 주무시기 전에 방송으로 알려드리고 국회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어도 밤 10시에는 대국민담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엄을 이보다 일찍 선포할 경우 퇴근 시간과 겹치면서 혼란이 커질 수 있었다는 주장도 펼쳤다. 전국 주요 도심에서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를 통제하려면 많은 군 병력과 경찰력이 필요했을 거라는 내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사실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서두를 게 뭐가 있었겠나.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산업통상부 장관이 (대통령실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정쯤 담화를 해도 됐었다”며 “굳이 담화할 것까지 있었겠나, 옛날처럼 세종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기자실에다가 떡하니 계엄을 공고해도 되는 것 아니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피해가 가장 적고, 혼란을 줄이고, 질서 유지 병력을 최소화하면서 국회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선포 시간을 정했다”며 “헌법 절차를 최대한 지키면서 불상사를 최대한 예방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또 “제가 계엄을 여러 번 했다 하면 더 완벽하게, 꼼꼼하게 했을 것”이라며 “45년 만에 선포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했던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가장 국민 피해를 줄이고 대응 병력과 경찰력을 최소화하면서 법 절차를 지키려고 한 것”이라며 “계엄 선포와 관련한 여러 제반 절차가 헌법 절차를 최대한 지키면서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언은 윤 전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 온 이른바 ‘메시지성 계엄’ 주장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비상계엄이 장기 집권이나 국가권력 독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야당의 잇단 탄핵과 예산 삭감 등으로 인한 국가 기능 마비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1심에서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군을 국회에 보낸 행위가 국회의 헌법적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국헌문란 목적’에 해당하고, 무장 병력을 동원한 행위 역시 내란죄의 ‘폭동’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