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엘리트는 강남에 많이 모이는가. 그리고 강남에 사는 것이 공직자의 자격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강남 집중을 단순히 투기꾼이나 부자들의 탐욕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대한민국의 지난 수십 년간 도시 발전 과정에서 교육, 교통, 의료, 문화, 직장 접근성, 인적 네트워크와 자산가치가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좋은 학교를 원하는 가정이 모이고 전문직과 기업인이 모이면서 좋은 서비스와 인프라가 따라왔다. 물론 사교육도 한몫했다. 사람이 몰리니 집값이 올랐고 집값이 오르니 자산 격차가 커졌다. 다시 그것이 진입장벽이 됐다.
결국 강남은 단순한 주거지역이 아니라 교육·자산·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됐다. 판검사, 교수, 의사, 기업인, 고위 공무원 등 사회적 엘리트가 그곳에 상대적으로 많이 모이는 현상의 이면이다. 문제는 강남에 사는 것 자체가 아니다. (하긴 나도 살고 싶지만) 진짜 문제는 왜 강남과 경쟁할 만한 선택지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판교와 분당, 과천과 세종, 송도와 지방 주요 도시들이 성장했지만 교육·문화·의료·교통·일자리와 자산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지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왜 강남에 사느냐”가 아니라 “왜 모두가 강남을 바라보게 만들었느냐”는 숙제가 남는다.
한편 공직자 검증 때만 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택과 부동산에 대한 논란이 시중 여론을 달군다.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있다. 어느 지역에 살고 어떤 집을 가지고 있는지가 개인의 정치적 가치관을 판정하는 기준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참 위험한 접근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직자라고 해서 예외일 이유는 없다. (하긴 아직도 청백리의 환상이 있긴 하다.)
공직 검증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주소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집을 합법적으로 취득했는가. 세금을 제대로 냈는가. 내부정보나 특혜를 이용했는가. 편법 증여나 부정청약은 없었는가. 공직을 이용해 자신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만들었는가. 이것을 물어야 한다. 최근에도 고위공직 후보자의 강남 고가주택을 둘러싸고 청약 과정이나 가족 간 거래가 논란이 된 사례들이 있었다. 이때 문제의 핵심은 ‘강남에 산다’는 사실이 아니다. 청약이나 거래 과정이 적법했는지, 세금과 이해충돌의 문제가 있었는지가 검증의 대상이어야 한다.
서울 송파 강남 서초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오랫동안 강남의 집값과 교육환경, 자산 집중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과 고위공직사회, 전문직 엘리트 가운데 상당수가 강남권 주택을 선택한다. 그들 역시 교육과 교통, 문화와 의료, 직장 접근성, 주거환경과 자산 안정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강남을 선택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강남을 선택하지 않아도 손해 보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학교가 강남에만 있을 이유가 없다. 좋은 일자리와 교통, 교육을 전국의 여러 거점에 만들어 강남과 경쟁하게 해야 한다.
강남 집값을 규제로 눌러 해결하려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강남을 원하는 근본적 이유를 그대로 둔 채 가격만 통제하면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남을 끌어내리는 정책보다 제2, 제3의 강남을 만드는 정책이 더 생산적이다. 지방 균형 발전 공공기관 지방이전보다 가장 확실한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이다.
엘리트의 다양성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엘리트의 특정 지역 집중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소가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편중이 문제일 수 있다. 비슷한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직업을 거쳐 비슷한 지역에 살며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지방 소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주거 문제는 다르다. 대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느끼는 노동시장은 다르고 수도권 명문대 출신과 지방 청년이 경험하는 취업시장은 다르다. 그래서 공직 인사에서 필요한 것은 ‘강남 배제’가 아니라 경험과 배경의 다양성이다. 지역, 학교, 직업, 세대, 기업 규모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훨씬 건강한 엘리트 구조다.
주소의 정치화를 끝내자
공직자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검증의 칼날은 정확해야 한다. 불법을 검증해야지 주소를 심판해서는 안 된다. 특혜를 따져야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이해충돌을 찾아야지 정상적으로 형성한 재산 자체를 죄악시해서도 안 된다.
특히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지역이나 특정 자산 보유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공직자의 품격은 우편번호가 아니고 사는 방식이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으며 공직에 들어간 뒤 자신의 이해관계와 공익을 얼마나 엄격하게 분리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강남에 사는 사람이 공직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고 지방에 사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나라가 돼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굳이 강남에 들어가기 위해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강남을 미워해서 강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강남의 장점을 대한민국 곳곳으로 확산시킬 때 비로소 강남 문제도 해결된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기회의 지역 격차를 줄이는 것. 공직자의 주소가 아니라 능력·윤리·준법·이해충돌을 검증하는 것.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대신 국가 지도층의 경험과 시각을 다양화하는 것. 그것이 부동산 정치의 감정을 넘어 한 단계 성숙한 국가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