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성장의 성과를 민생으로 확산하고 산업·투자사업의 실행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2기 경제팀을 꾸렸다. 금융·거시경제에 정통한 ‘경제 책사’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올려 주거·일자리·서민금융 등 사회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재원 배분을 조율하도록 하고, 산업 현장을 두루 경험한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을 경제성장수석에 배치했다. 성장으로 확보한 재원을 국민 생활 개선에 어떻게 투입할지와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낼 투자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집행할지를 함께 겨냥한 인선이다.
이번 개편은 정책실장과 경제성장수석의 역할 분담을 보다 선명하게 했다. 하 실장은 경제와 사회정책을 조율해 ‘성장의 온기’를 넓히고, 문 수석은 첨단산업 육성과 메가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성장의 엔진’을 맡는 구도다. 하 실장에게는 국회에 계류 중인 미래대응기금 설치 법안의 처리와 맞물려 기금 재원을 3대 핵심 사회정책에 어떤 기준과 규모로 배분할지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문 수석은 대미투자 사업의 조건을 구체화하고 국내 대규모 투자의 장애물을 풀어 실제 투자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1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인선을 발표했다. 성 수석은 “경제 성장의 흐름을 민생경제로 이어가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사회정책에 더욱 힘을 싣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사진=연합뉴스)
하 실장은 한국은행과 한국금융연구원,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를 거친 경제학자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전환적 공정성장 전략을 맡았고, 정책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에서도 경제정책을 담당했다. 초대 경제성장수석으로 성장전략을 설계한 데 이어 정책실장으로는 그 성과를 국민 생활로 연결할 정책과 재원 배분을 함께 조율하게 됐다.
하 실장은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장과 민생을 함께 뒷받침해야 한다는 ‘성장투자형 확장재정론자’로 꼽힌다. 내수를 살리고 기술·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재정을 투입하는 한편, 저출생·주거·돌봄·청년 기회와 사회안전망에도 투자해 성장의 기반을 넓히자는 구상이다. 복지를 단순한 지출로 보기보다 개인의 삶을 뒷받침하고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사회투자로 바라본다. 재정건전성도 당장의 국가채무 비율만이 아니라 재정 투입이 중장기 성장과 세수 기반 확충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하 실장은 주거·일자리·서민금융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정책별 우선순위와 지원 방식을 조율하는 일이 함께 요구될 전망이다. 금융과 거시경제를 연구해 온 전문성이 정책실장 발탁의 의미를 더하는 대목이다. 국민 생활을 개선할 정책과 이를 지속할 재정·금융 수단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차기 정책실장의 역할을 기존 경제 중심에서 사회 분야 중심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는 주거·일자리·서민금융을 ‘3대 핵심 사회정책’으로 제시하며 전 부처에 신속한 추진을 지시했다. 초과 세수 등 가용 재원을 양극화 완화와 국민 생활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밝힌 만큼 하 실장의 업무는 이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 실장이 활용할 핵심 툴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은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힐 때 재원을 축적해 미래 투자에 활용하고, 세수가 줄어들 때 재정 운용을 뒷받침하려는 취지다. 기금이 설치되면 이를 주거·일자리·서민금융에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투입할지가 하 실장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기금 활용은 국회의 법안 심의 결과와 최종적으로 정해질 사용 범위에 달려 있다. 주택 공급과 일자리 사업, 서민금융 지원 가운데 어떤 사업이 기금 목적에 부합하는지 가리고, 기존 예산·기금과의 역할도 조정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쌈짓돈’ 논란이 있어 적절한 통제장치가 어떻게 마련될지가 관건이다.
발언하는 문신학 산업부 차관
문 신임 경제성장수석에게는 하 실장의 역할이 넓어진 자리에 성장정책의 실행력을 보강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성 수석은 문 수석을 “산업·에너지 분야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실물경제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과 잠재성장률 회복을 강조했다.
문 수석은 행정고시 38회로 공직에 입문해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 석유산업과장, 원전산업정책관 등을 지냈다. 산업정책과 에너지 분야의 실무를 두루 다뤘다는 점에서 국내 첨단산업 투자와 대미 에너지 투자사업을 함께 챙겨야 하는 현안에 맞춘 인선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발표된 대미투자 계획의 후속협의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원자력발전소 8기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하고 투자 조건과 한국의 참여 범위를 구체화하는 협의가 남아 있다. 미국의 요구를 국내 산업의 이해와 조율하면서 투자에 따른 실익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메가 프로젝트의 부처 간 이견과 사업 추진 과정의 장애물을 풀어 실제 투자로 연결하는 일이 관건이다.
문 수석은 문재인 정부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에 참여했다. 월성 원전 1호기 자료 삭제 사건으로 구속·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6월 산업부 1차관으로 복귀한 데 이어 이번에 청와대 성장정책의 지휘부에 합류했다.
역대 경제수석이 주로 기재부 계열 관료나 경제학자의 자리였다는 점에서도 이번 인선은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홍장표 초대 경제수석 이후 윤종원·이호승·안일환 등 기재부 계열 관료가 연이어 기용됐다. 윤석열 정부의 최상목·박춘섭 경제수석도 각각 기재부 1차관과 예산실장 출신이었다.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출범 이후 이 부처 출신이 경제수석에 오른 것은 문재인 정부의 박원주 전 특허청장에 이어 문 수석이 두 번째다.
청와대에는 이미 윤성혁 산업정책비서관과 이원주 국가전략투자보좌관, 국가안보실의 김성열 경제안보비서관 등 산업부 출신이 포진해 있다. 문 수석까지 합류하면서 산업 육성과 대규모 투자사업, 경제안보 실무에 이어 성장전략을 조율하는 수석 자리까지 산업 관료의 역할이 커지면서 ‘산업부 전성시대’가 왔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기재부(현 재경부) 관료는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기재부 1차관 출신 김용범 전 정책실장의 후임은 학자 출신 하 실장이고, 경제성장수석은 산업부 관료인 문 수석이다. 재정경제부 1차관에도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임명됐다. 기재부 출신 이형일이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만큼 기재부 전반의 배제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산업·투자사업에는 산업 관료의 실행력을, 정책 총괄에는 성장과 양극화를 함께 다뤄 온 학자의 역량을 앞세운 배치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1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책실장에 하준경 현 경제성장수석(왼쪽부터), 경제성장수석에 문신학 현 산업통상부 차관, 평화외교특별보좌관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국방정책특별보좌관에 김병주 의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에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 정의경 국토도시실장, 지방시대위원장에 박정현 전 부여군수를 임명 및 위촉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이날 평화외교특별보좌관에 민주당 대표이자 6선인 송영길 의원, 국방정책특별보좌관에 4성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을 각각 위촉했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인 이들을 영입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할 별도의 자문 진용을 보강한 셈이다. 대북 대화와 긴장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미 간 안보협력 과제도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외교와 국방에 대한 조언을 정책 판단에 반영하려는 인선으로 풀이된다. 다만 특별보좌관은 정규 참모조직과 역할이 다른 만큼 국가안보실 등 기존 조직과 어떤 방식으로 협업할지가 관건이다.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는 정의경 국토부 국토도시실장을 임명하고, 장관급 지방시대위원장에는 박정현 전 부여군수를 위촉했다. 국토부에는 내부 관료를 기용해 정책 집행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지방시대위원회에는 기초자치단체를 이끈 인사를 배치해 지역 현장의 경험을 더하는 구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