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에서 온 편지]투르크메니스탄에서 부활하는 한국 조선

정치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02일, AM 05:01

[공관에서 온 편지]투르크메니스탄에서 부활하는 한국 조선
[이원재 주투르크메니스탄 대한민국 대사] 카스피해는 특이한 바다다. 이름은 바다지만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아제르바이잔에 둘러싸여 있는 ‘육지 속의 바다’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바다를 규율하는 국제법인 ‘유엔해양법협약’이 아니라 연안 5개국이 별도로 합의한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의 우선 적용을 받는다. 한반도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는 카스피해는 석유 등 자원의 보고이자 교통과 물류의 요충으로 그 의미가 크다.

카스피해에 면해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항구 도시 투르크멘바시에는 국영 발칸조선소가 있다. 2026년 5월 8일,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건조된 첫 선박인 6100 t급 다목적 화물선의 인도식이다. 2018년 완공된 발칸조선소는 최신 설비를 갖추고서도 기술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건조 실적이 없었다. 자국에서 처음으로 건조한 선박이 정식으로 발주처인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 인도되는 행사인 만큼 이 행사는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부 요인들의 참석하에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숨은 주역이 있다. 우리 업체 고려조선산업기술이다. 경남 양산시에 소재한 이 업체의 직원들은 대부분 우리 조선업체에서 퇴직한 ‘올드보이’들이다. 창업자이기도 한 최영욱 고려조선산업기술 대표 역시 조선 분야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2023년 9월, 발칸조선소와 고려조선산업기술은 총 4100만 달러 규모의 다목적 화물선 2척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고려조선산업기술이 설계와 자재 공급, 기술 자문을 담당하고 조선소 측이 작업 인력을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고려조선산업기술에 따르면 첫 선박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단 고려조선산업기술도 신생 업체이고 발칸조선소도 선박 건조 실적이 없어 보증을 서겠다는 은행이 없었다.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다행히 고려조선산업기술이 위치한 부산경남 지역의 최대 은행인 부산은행이 나서 무사히 계약이 성사됐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도 우리 기술자 15명이 발칸조선소에 상주하며 경험이 없는 현지 근로자들을 교육하고 독려하면서 공정을 진척시켜야 했다.

이러한 노고 끝에 1호선 완성에 이어 현재 2호선도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게다가 2026년 2월에는 3호선과 4호선 추가 건조 계약이 이뤄졌다. 최근 한국 조선의 부활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고려조선산업기술의 행보 역시 주목을 요한다. 이미 퇴직한 인력을 재고용해 숙련된 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활용하는 모습은 고령화 사회에서의 재취업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특히 중소 및 지방 기업 지원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되리라고 본다.

지난달 16일, 서울에서는 제1회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이에 앞서 하루 전인 15일에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 행사도 있었다. 최근 러우 전쟁과 중동 사태로 인해 지정학적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카스피해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행사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시의적절한 계기를 마련했다.투르크메니스탄과도 투자보장협정과 세관상호지원협정 등의 서명이 이뤄지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건조한 첫 선박의 이름은 ‘가담리’, 투르크멘어(투르크메니스탄 공용어)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한국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우호 협력 관계가 꾸준히 발전해 나가기를, 그리고 그 발걸음을 함께하며 우리 ‘올드보이’들이 투르크메니스탄에 뿌린 조선 산업의 씨앗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