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격노의 일상화’ 정치 언어의 극한 인플레 [이슈 현미경]

정치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06일, PM 04:37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격노의 대통령’이었다. 특히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VIP 격노설’은 정권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24년 22대 총선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의 충돌에서도 ‘격노’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야당을 향해서는 종종 ‘종북 반국가세력’이라는 거친 워딩까지 사용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극한 대치에 여야 격노는 일상이 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늘 화가 나 있다. 여야 내부 주류·비주류의 설전은 여야 맞대결보다 더 치열하다. 증오와 혐오가 상승 작용하는 정치 언어의 극한 인플레이션 현상은 저주를 쏟아낸다. 때로는 주홍글씨와 정치적 낙인찍기도 동원된다. 역설적인 건 팬덤의 지지라는 예상밖 선물이다.

◇민주당, 끝없는 ‘내란 몰이’ vs 국민의힘, 걸핏하면 ‘독재·탄핵’

정치의 본질은 권력 획득 또는 장악을 위한 전쟁이다. 다만 물리력이 아닌 말과 글을 사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여야 의원들의 정치 행위는 대부분 말과 글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여야의 언어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 팽창으로 시중의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비유하면 언어의 인플레는 여야 정치인의 거친 워딩이나 직설 화법이 과도하게 남발되면서 말의 무게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다.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독재자, 이재명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사실상 규정하고 있다. 2025년 21대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이라는 정통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고려하면 ‘독재’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국민의힘의 3일 장외투쟁이 대표적이다. 장동혁 대표는 “이성을 상실한 이재명 독재에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도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헌법 파괴, 사법 파괴“라고 주장했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대통령 탄핵이나 퇴진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의석 구조로는 국회에서 탄핵안 통과는 물론 발의조차 불가능하다.

민주당도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을 향해 끝없는 내란몰이에 나섰다. 잊을 만하면 △내란 공범 △내란 정당 △내란 비호 세력이라는 정치적 낙인이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는 내란심판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 가능성까지 위협했다. 윤석열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워딩은 혐오 그 자체였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당시 ‘현대판 을사오적’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에는 ‘일제 밀정’ △윤석열정부 수직적 당청관계와 관련해 ‘용산 하청업체’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여야 격전장인 국회 법사위에서도 언어 인플레는 손쉽게 드러난다. 지난달 16일 김승원 전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악마’라는 증오 표현이 등장했다. 6일 법사위의 대법원 국감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는 건가“라는 모욕적인 질문도 등장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감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조희대+도요모티 히데요시)“라는 인격 모독에도 시달렸다. 국민의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민주당이 주도한 이재명 대통령 사법리스크 해소와 관련, △노골적인 입법 쿠데타 △두목 결사보위하는 조폭집단 △이재명 교주 모시는 광신도들 등의 거친 표현으로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강성 팬덤에 의존한 언어 인플레, 알고리즘 정치 부작용 확산

여야 각당 내부의 언어 인플레 현상은 더 심각하다. 특히 주요 정치인들의 영향을 받은 강성 지지층의 내부 설전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의 정면충돌 이후 범여권 지지층의 언어 인플레는 레드라인을 이미 넘어섰다. 차마 글로 옮겨적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친문 지지층은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사실상 철회한 상태다. 적대감의 강도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다. 친명 지지층도 마찬가지다. 유 작가의 재산 의혹 관련 조사가 시급하다고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정치적 부상 이후 기존 분열상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장동혁 대표와 가까운 지지층은 한 의원을 향해 ”배신자·대머리 후니·한가발“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한동훈 의원과 가까운 지지층은 장 대표를 향해 ”왕꽃달고 북치는 대표·민주당 특급 도우미“라고 낙인찍었다. 이재명정부의 실정과 지지율 하락으로 보수진영이 모처럼 호기를 맞았지만 총선 승리를 위한 통합과 연대보다는 주도권 장악을 위한 기싸움만이 치열하다.

언어 인플레의 역설적인 부작용은 거친 워딩을 주로 사용하는 정치인이 주목받는다는 점이다. 특히 강성 팬덤의 맹목적인 지지는 유튜브 공간에서 알고리즘을 타고 더욱 확산된다. 강성 팬덤, 여야 정치인, 유튜브 알고리즘의 묘한 공생 관계다. 민주당의 경우 정청래 전 대표와 추미애 경기지사가 각각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 국민의힘과의 극한대치를 무자비한 공세로 돌파하면서 범여권 지지 팬덤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한 정청래 전 대표와 추미애 지사는 민주당의 유력 차기주자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역시 장동혁 대표는 물론 이진숙·김태규·주진우 의원 등이 이재명정부를 거칠게 비난하면서 강성 팬덤의 알고리즘 선택을 받으며 정치적 체급이 각각 수직상승했다.

유튜브 알고리즘 정치의 문제점을 천착해온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AI시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이른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증폭시키는 현상)’ 현상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치닫게 된 근본 원인“이라면서 ”보수든 진보든 이 편향된 알고리즘을 이용해 장사하는 극우·극좌 유튜버들이 정치를 망치는 가장 나쁜 매개체“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6월 지방선거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 수는 대략 4400만명 정도인데 보수진보 양측의 강성 지지층은 모두 합쳐도 1000만명을 넘기 힘들다“며 ”여야 정치인들이 에코 체임버나 필터 버블(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검색기록을 분석한 정보만 걸러서 보여주는 현상)에 갇혀 이것을 국민 전체의 의견이라고 착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오히려 침묵하는 중도층의 목소리를 의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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