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편리함을 앞으로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 편리함이 어떤 선택으로 가능해졌고 의료체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따져볼 때다. 먼저 병원을 고를 자유다. 나라도 가족이 크게 아프면 더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갈 것이다. 병원도 환자를 더 받으려 한다. 각자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병원 사이에 역할을 나누는 장치가 약하면 이 선택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쏠림을 만든다. 환자가 줄어든 지역병원은 필요한 진료과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그러면 환자는 다시 지역을 떠난다. 서울의 큰 병원에 갈 자유와 집 근처에서 믿고 치료받을 선택지는 같은 것이 아니다.
다음은 낮은 치료비다.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목표는 중요하다. 다만 환자가 내지 않는 비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환자 부담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진료를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보상하는 데는 소홀했다. 응급환자가 없는 밤의 대기, 환자가 적은 지역의 수술팀은 진료 건수만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보상은 부족한데 일은 힘들고 사고 책임까지 크다. 그러면 지금 일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더라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준다. 응급실과 수술실처럼 꼭 필요한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을 개인의 사명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짧은 대기시간과 좋은 치료 성적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한 의사가 많은 환자를 빠르게 보는 방식, 이미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유지된다.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충분한지는 따로 보아야 한다.
최근 정책 방향은 걱정스럽다. 이달 8일 내년 건강보험료율이 동결됐다. 건강보험이 자리 잡은 뒤 동결은 다섯 번뿐인데 그중 세 번이 최근 4년 사이에 있었다. 같은 날 보장을 넓히는 결정도 함께 내려졌다.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도 덜 걷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하나하나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결정이다. 동시에 인기 없는 결정은 미루는 선택이기도 하다. 경기와 나라 살림은 오르내린다. 그러나 의사를 길러내고 진료팀을 만드는 일은 그에 맞춰 늘리고 줄일 수 없다. 여유 있을 때 부담을 낮추고 어려워지면 투자를 미루면 미래 준비는 늘 뒤로 밀린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의 선택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필자가 걱정하는 파국은 전국의 병원이 갑자기 멈추는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은 그대로이고 치료비 부담도 낮은데 정작 치료해 줄 사람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변화는 모두에게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은 더 멀리 가고 돈을 더 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길을 찾는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먼저 어려워진다.
그래서 무엇을 남길지 정해야 한다. 병원 선택을 조정하려면 가까운 곳에 믿고 갈 병원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치료비 부담을 낮게 유지하려면 그 비용을 보험료와 세금으로 얼마나 함께 질지 이야기해야 한다. 진료한 양뿐 아니라 필요한 때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에도 보상해야 한다. 의료진과 병원도 공적으로 보상받는 만큼 어떤 역할과 책임을 맡을지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것은 지금의 이용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아플 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을 지키려면 일부 편리함을 내려놓거나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결정을 미루는 사이 기반이 약해지면 우리가 피한 부담을 다음 세대가 더 적은 선택지와 더 큰 비용으로 감당하게 된다.









